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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부산 여행기 2편: 해동용궁사, 유옥, 수월경화

by 크리m포켓 2025.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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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찾을 때마다 매번 느끼는 건, 이 도시가 주는 인상이 매번 다르다는 거다.

어떤 때는 활기참으로 가득하고, 어떤 때는 바다의 고요함을 보여주고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이번 여행은 후자였다. 화려한 해운대도, 북적이는 남포동도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은 한적하고, 차분한 시간 속에서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하루였다.

컽바속촉 유옥 장어덮밥

해동용궁사 

부산을 찾을 때마다 매번 느끼는 건, 이 도시가 주는 인상이 매번 다르다는 거다. 어떤 때는
활기참으로 가득하고, 어떤 때는 바다의 고요함을 보여주고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
이번 여행은 후자였다. 화려한 해운대도, 북적이는 남포동도 아니었다. 오히려 조금은 한적하고, 차분한 시간 속에서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는 하루였다.

아침 일찍 해동용궁사로 향했다. 가는 길부터 이미 다르다. 보통 절은 산속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여긴 바다와 맞닿아 있다. 차에서 내려 절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갈수록, 쿵쿵 부서지는 파도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그 소리가 내 심장 박동과 겹치는 듯했다.

입구에 늘어선 십이지상을 지나며 괜히 장난처럼 내 띠 동물 앞에 서서 손을 얹었다. 별생각 없이 웃다가도, 갑자기 마음이 진지해졌다. 마치 나도 모르게 “잘 살아가고 있지?”라고 묻는 기분이었다.

계단 끝에 다다랐을 때,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숨이 멎는 듯했다. 절벽 끝에 서 있는 불상은 금빛 햇살을 받아 반짝였고, 그 뒤로 파란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 순간 나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다가도, 결국 다시 내려놓고 눈으로만 담았다. 사진에 다 담을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바닷바람은 차가웠지만 묘하게 따뜻했다. 속으로 작은 소원을 빌었다. 크거나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지금 이 순간처럼 마음이 고요하게 살 수 있기를.

유옥

절에 다녀와 내려오는 길에 무엇을 먹을지 한참 고민했다.
부산에는 장어구이, 조개구이가 유명한데.. 친구가 추천해 준 맛집은 장어덮밥이었다.
장어덮밥은 오사카에서 미슐랭 맛집도 가보고 했던 터라, 솔직히 처음에는 별 기대가 없었다.
하지만 처음에 나오는 비주얼에 한번 감탄하고, 또 맛을 보며 한번 더 감탄했다.

여기가 일본이던가? 아니 한국인데... 장어는 바삭하면서도 속살은 촉촉했다. 입안에 넣자마자 달큼하고 고소한 풍미가 퍼졌다. 밥 위에 얹힌 김가루와 쪽파가 장어와 어우러져 입안에서 작게 폭죽처럼 터졌다. 맛있다,라는 말만으론 부족했다. 그냥 살아 있는 맛 같았다.

그리고 우리는 절반쯤 먹었을 때, 가게에서 추천해 준 방법인 오차즈케도 시도해 봤다. 뜨끈한 차를 부어 내리자, 밥 위에 있던 김가루가 몽글몽글 떠올랐고, 장어 향이 국물에 퍼져 나갔다. 숟가락으로 떠 한입 넣는 순간, 순간적으로 몸이 풀리며 긴장이 사라졌다. 바닷바람에 서늘해진 속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친구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거 진짜 밥이 아니라 약 같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꼭 위로받는 느낌이었으니까.

수월경화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난 뒤, 우리는 수월경화라는 카페로 향했다. 이름부터 시적이라 마음이 끌렸는데, 막상 들어서자 더 마음에 들었다. 커다란 창 너머로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고, 그 앞을 해변열차가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창가 자리에 앉아 커피를 기다리며 멍하니 바다를 바라봤다. 열차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커피가 나왔고, 달콤 쌉쌀한 라테를 한 모금 마셨다. 그 맛보다도 창밖 풍경이 내 마음을 더 채웠다. 바다는 점점 색을 바꾸며 저물어 갔다. 파랗던 바다가 주황빛으로 물들더니, 이내 붉은 노을빛을 머금었다.

친구와는 특별히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았다.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공유되는 순간이었다. 창밖 풍경이 모든 말을 대신했다.

오늘의 부산, 오늘의 나

나는 오늘 하루를 곱씹었다. 절에서 들었던 바람 소리, 뜨끈한 국물이 전해준 따스함, 창밖으로 지나가던 열차와 바다. 하나하나가 큰 이벤트는 아니었지만, 그 작은 조각들이 모여 내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여행은 결국 이런 게 아닐까. 어디를 가느냐보다, 어떤 순간을 만나느냐. 오늘의 부산은 내게 그런 순간들을 아낌없이 내어줬다.

아마 한참 뒤에도 오늘을 떠올리면 미소 지을 것 같다.
바다의 파도 소리, 장어덮밥 위로 부어 내리던 뜨거운 차, 그리고 카페 창가에서 바라본 노을빛.
그건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내 마음 어딘가 깊숙이 각인된 ‘살아 있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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