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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주도 여행기 4편: 아침미소목장, 고집돌우럭, 델문도

by 크리m포켓 2025.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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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공기가 다르다는 건, 정말 신기한 일이다.
같은 제주인데도, 날마다 냄새가 다르다.
이날의 공기엔 풀 냄새와 우유 냄새가 살짝 섞여 있었다.
창문을 열자마자 들려오는 새소리, 그리고 멀리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소의 울음소리.
하루가 그렇게 시작됐다.

메뉴 구성도 참 좋았던 고집돌우럭 상차림 모습

아침미소목장

길을 따라 달리다 보면, 갑자기 펼쳐지는 초록빛 들판이 있다.
그곳이 바로 아침미소목장이었다.
차를 세우고 내리자 바람이 먼저 다가왔다.
그 바람 속에는 풀 냄새와 흙냄새, 그리고 어제보다 조금 더 따뜻한 햇살이 섞여 있었다.
목장 한가운데서 바라본 하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넓었다.
그 아래엔 검은 얼룩이 있는 젖소들이 느릿느릿 걸어 다니고 있었다.
“아침미소”라는 이름이 왜 붙었는지 알 것 같았다.
정말로, 그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가까이 다가가니 송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내가 손을 뻗자,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코끝으로 손등을 살짝 스쳤다.
그 따뜻한 온도에 가슴이 묘하게 간질거렸다. 순한 눈망울, 느릿한 움직임, 그리고 그 안의 평화.
그 단순한 순간이 마음 한가운데를 부드럽게 비췄다.
목장 안 카페에서 우유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한입 먹는 순간, 입안 가득 고소한 향이 퍼졌다.
달지 않았다. 대신, 맑았다. 바람, 햇살, 풀잎 냄새까지 한꺼번에 녹아드는 맛이었다.
그 한입 덕분에, 하루가 부드럽게 시작되었다.

 

잔디밭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
도시에서는 늘 ‘해야 할 일’을 떠올렸는데, 여기선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게 너무 좋았다.

고집돌우럭

목장을 나와 점심으로 향한 곳은 고집돌우럭이었다.
이름부터 제주스럽다. ‘고집’이라는 단어가 왠지 좋았다. 누군가의 신념이 담긴 음식 같았다.
식당 문을 열자 바다 내음이 살짝 스쳤다.

테이블마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따뜻한 김이 피어올랐다.  바다를 등진 창가 자리에 앉았다.
주문한 돌우럭 구이가 나왔다.
한눈에 봐도 정성스럽게 구워진 생선. 젓가락을 넣자 바삭한 껍질이 부서지고, 흰 살이 촉촉하게 드러났다.
한 점을 들어 입에 넣자, 소금과 바다, 불의 향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정말 맛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니었다.
음식 속에 ‘정성’이 느껴졌다. 이건 배를 채우는 밥이 아니라, 하루를 단단히 붙잡아주는 온기였다.
곁들여 나온 미역국도 깊었다. 뜨거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자, 마음까지 따뜻해졌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히 먹었다.
식당 벽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제주는 고집이 만든 섬이다.” 그 말을 보자, 왠지 웃음이 났다.

그래, 제주엔 ‘느림의 고집’, ‘자연의 고집’, 그리고 ‘진심의 고집’이 있었다.
그게 이 섬의 매력이다.

델문도 카페

점심을 마치고 향한 곳은 오션뷰 카페 델문도였다.
제주시 조천읍 바닷가에 자리한 카페로,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창문 밖 풍경에 넋을 잃었다.
바다가 정말 ‘바로 앞’이었다. 유리창 한 장을 사이에 두고 파도가 부서졌다.
창가 자리에 앉았다. 아이스라테를 주문하고, 잠시 바다를 바라봤다.
커피 위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조용히 들렸다.
라테를 한 모금 마시자, 입 안에 남는 쌉싸래함이 바람과 섞여 사라졌다.
카페 한쪽에서는 누군가 기타를 치고 있었다. 멜로디가 바다 위로 퍼졌다.
그 순간, 시간의 흐름이 느려졌다.
창문 밖으로는 커플들이 손을 잡고 걷고 있었고, 한 아이는 모래사장에서 작은 돌을 주워 파도에 던졌다.
그 파도가 잠시 하얗게 터졌다.

나는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 모든 장면을 그냥 받아들였다.
이게 여행이구나, 이게 쉼이구나... 그렇게 느꼈다.

밤으로 스며드는 제주

해가 천천히 저물었다.
하늘은 붉은빛에서 보랏빛으로, 그리고 점점 어둠으로 물들었다.
델문도를 나서 숙소로 향하는 길, 라디오에서는 낯익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지금 이 순간, 그대로 있어줘…” 그 가사에 괜히 가슴이 먹먹했다.
오늘 하루의 장면들이 천천히 머릿속을 스쳤다.
아침의 송아지, 고집돌우럭의 바삭한 살점, 델문도의 노을빛 커피잔.
그 모든 장면이 한 편의 영화처럼 이어졌다.
창문 밖으로 바다가 따라왔다. 어둠 속에서도 여전히 부서지는 파도 소리.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이제는, 돌아가도 괜찮겠다.”

제주는 언제나 그렇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그저 그 자리에 머무는 것만으로 마음을 채워주는 곳.
그게 이 섬의 가장 큰 힘이다.
오늘 밤, 나는 그 평온함을 품은 채 잠이 들었다.
파도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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