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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청송 여행기 1편: 소노벨 리조트, 송소고택, 신동양식당

by 크리m포켓 2025.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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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으로 향하던 길, 창문 밖으로 스치는 산세가 유난히 부드러웠다.
어디서부터 가을이 시작된 걸까. 도로 옆 감나무에는 주황빛 감이 매달려 있었고, 공기는 살짝 차가웠다.
그 냄새가 참 좋았다. 바람 속에 묻은 솔향, 그리고 낯선 곳으로 떠나는 설렘이 한데 섞인 냄새.
이번 여행지는 ‘청송’. 이름부터 맑고 고요했다.
어릴 적 교과서에서 ‘청송군’이라는 글자를 처음 봤을 때, ‘푸른 소나무가 많은 고을’이라는 뜻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그때부터 언젠가 꼭 가보고 싶던 곳.
그리고 오늘, 그 이름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청송 소노벨 야외놀이터 모습

소노벨 리조트 

멀리서 봤을 땐 크고 현대적인 리조트였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어쩐지 따뜻했다.
하늘은 맑았고, 구름은 낮게 떠 있었다.
청송의 공기는 ‘맑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마치 공기마저 투명한 느낌이었다.
짐을 풀고 창문을 열자, 눈앞에 산이 가득 펼쳐졌다.
햇살이 잔잔히 나뭇잎 사이를 통과하며 객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 빛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저녁 무렵엔 솔샘온천으로 향했다.

물소리가 졸졸 흐르는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몸이 먼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온천수는 살짝 유황 향이 섞여 있었고, 손끝이 닿자마자 피로가 스르르 녹아내렸다.
눈을 감고 온천물속에 몸을 맡겼다. 그 따뜻함 속에서 오늘의 공기와, 산과, 바람이 함께 녹아드는 것 같았다.
주변 사람들의 웃음소리, 아이가 물을 튀기는 소리,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매미소리까지...
그 모든 게 한 폭의 풍경처럼 느리게 흘러갔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좋은 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편안한 공간.
그게 청송의 첫인상이었다.

송소고택

다음 날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 때쯤 송소고택으로 향했다.
고택의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시간을 거슬러 들어온 것 같았다.
낡은 기와지붕, 나무문, 그리고 삐걱이는 마루. 그 안에는 오랜 세월을 묵묵히 견뎌온 온기가 담겨 있었다.
고택의 돌담길을 따라 걷는 동안 발걸음이 자연스레 느려졌다.
돌 틈새에서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들이 참 예뻤다.
햇살이 담장 위로 부서지고, 그 빛이 내 어깨 위에 머물렀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차분해졌다.
관람객 몇 명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흩어지며 마치 오래된 시간 속으로 녹아들었다.
마루에 앉아 숨을 고르자, 나무 향이 은은히 코끝에 스쳤다.
어릴 적 할머니 댁 마루에서 맡던 그 냄새와 닮아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그곳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했다.
고택 뒤편 언덕으로 올라가니 작은 연못이 있었다.
물 위에는 바람결이 살짝 일렁였고, 연잎 몇 장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사람도 이렇게 고요하게 나이 들 수 있으면 좋겠다.’
송소고택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었다. 그곳은 세월이 말없이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시간의 냄새, 나무의 온기, 그리고 그 속을 걷는 나 자신까지... 모두가 잠시 과거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신동양식당

고택을 나서자 배가 고파왔다.
청송 하면 떠오르는 게 바로 ‘달기약수 닭백숙’. 그래서 망설임 없이 신동양식당으로 향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약수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
테이블마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닭이 푹 익는 냄새가 가득했다.
주문을 마치고 기다리는 동안 창밖을 보니 산바람이 불어와 나뭇잎들이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닭백숙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닭은 부드럽고, 육수는 깊었다. 한 숟가락 떠먹자마자 입안이 따뜻해지고, 몸이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었다.
소금에 살짝 찍어 먹으면 담백함 속에 고소한 맛이 돌았다.
정말 ‘약이 되는 음식’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옆자리에는 나이 지긋한 부부가 앉아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이 맛이야, 이 맛”이라며 웃었다. 그 웃음이 참 좋았다.
그냥 닭백숙 한 그릇이었지만, 그 안에는 ‘살아가는 온기’가 있었다.
식당 아주머니가 “멀리서 왔어요?” 하며 말을 건넸다.
“네, 잠깐 쉬러 왔어요.”

그 말에 아주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청송은 쉬러 오기 딱 좋은 곳이에요.”
그 말이 오래 남았다. 정말 그랬다. 청송은, 사람을 쉬게 만드는 마을이었다.

저녁의 청송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리조트로 돌아왔다.
창문 밖으로 석양빛이 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 붉은빛이 산 능선을 따라 천천히 번져가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저 멀리 들리는 벌레소리와 저녁 바람이 어우러져, 마음이 고요해졌다.
커피 한 잔을 들고 발코니에 앉았다.
햇살이 완전히 사라지고, 산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모든 걸 느꼈다.
이 여행은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용히, 마음 한편을 따뜻하게 만들어주었다.
온천의 물소리, 고택의 바람, 그리고 닭백숙의 따뜻한 국물.
그 모든 게 하나로 이어졌다.

창밖 어둠이 서서히 내려앉았다.
별 하나가 반짝였다. 그 빛을 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오늘 하루가 참 좋았다.
그리고 내일도 이 고요한 청송의 공기 속에서, 천천히 깨어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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