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학교 숙제를 함께 보다가 문득 '아, 이건 미리 잡아줬어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학년 때는 그저 즐겁게 학교 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싶었는데, 학년이 올라가니 기초가 탄탄한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의 차이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워킹맘으로 퇴근 후 아이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한정적이다 보니,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연산 연습을 꾸준히 하지 못한 아쉬움
제가 가장 후회하는 부분은 바로 연산 학습입니다. 연산 학습이란 덧셈, 뺄셈, 곱셈, 나눗셈 등 기본 계산을 반복 훈련하여 자동화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저학년 때는 아이가 학원 숙제도 많지 않았고, 저 역시 퇴근 후 피곤한 상태에서 '오늘은 그냥 쉬자'는 생각으로 연산 문제집을 미루곤 했습니다.
하지만 3학년이 되어 분수와 소수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개념은 이해하는데 계산 과정에서 자꾸 실수가 나오는 겁니다. 특히 분수의 통분과 약분을 할 때 곱셈, 나눗셈이 바로 떠오르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렸고, 그 와중에 덧셈이나 뺄셈에서도 틀리니 아이가 점점 수학을 어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육학에서는 이를 '자동화(Automaticity)'라고 부릅니다. 자동화란 반복 학습을 통해 특정 작업을 의식적인 노력 없이 수행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합니다. 연산이 자동화되지 않으면 문제를 풀 때마다 계산에 집중력을 쏟아야 하고, 정작 문제 해결에 필요한 사고력은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지금 와서 부랴부랴 연산 문제집을 풀리고 있지만, 아이는 "어차피 수학 숙제하면서 연산하는데 왜 또 해야 해?"라며 반항심을 보입니다. 저학년 때는 부모가 시키면 순순히 따라주던 시기인데, 그때 습관을 잡아두지 못한 게 정말 아쉽습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연구에 따르면, 초등 저학년 시기의 연산 능력은 이후 수학 학업 성취도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고 합니다(출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 말이 정말 맞더라고요. 하루 10분이라도 꾸준히 연산 한 장씩 풀게 했더라면, 지금 이렇게 아이도 저도 힘들지 않았을 겁니다.
글쓰기 습관을 일찍 잡지 못한 후회
두 번째로 아쉬운 건 일기 쓰기입니다. 초등학교에서는 담임 선생님에 따라 일기를 숙제로 내는 학년도 있고 그렇지 않은 학년도 있었는데, 저는 숙제로 나올 때만 아이에게 쓰게 했습니다. 글쓰기를 싫어하는 아이의 성향을 고려해 억지로 시키지 않으려 했던 건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오히려 독이 되었습니다.
메타인지(Metacognition)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메타인지란 자신의 사고 과정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조절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글쓰기는 바로 이 메타인지를 키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입니다. 자신의 하루를 돌아보고, 생각을 정리해서 문장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힘을 기르게 됩니다.
하지만 저희 아이는 지금까지도 글쓰기를 어려워합니다. 학교에서 독후감이나 감상문을 쓸 때마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어"라며 힘들어합니다. 문장이 단편적이고, 생각을 깊이 있게 펼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서울대학교 국어교육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초등 저학년 시기에 형성된 쓰기 습관은 중·고등학교 학업 수행 능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출처: 서울대학교). 제가 직접 써보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이제 와서 같이 써보자고 해도 사춘기가 다가오는 나이라 엄마 말을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초등 1학년 때부터 한 줄이라도 매일 쓰는 습관을 들였더라면, 지금쯤 아이가 자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데 훨씬 익숙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치원 시기나 초등 1학년 때는 아이가 말한 내용을 부모가 대신 써주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그러다 점차 한 줄, 세 줄, 다섯 줄로 늘려가면서 무한 칭찬과 함께 글쓰기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게 중요합니다.
돌이켜 보면 저학년 시기는 아이가 부모의 말을 가장 잘 듣는 때입니다. 그때 글쓰기를 당연히 해야 하는 일상으로 만들어줬더라면, 독서 논술 학원비도 절약하고 아이의 표현력도 키워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큽니다.
독서 습관만큼은 제대로 잡아준 보람
반면 제가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 독서 습관입니다. 저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잠들기 전 꼭 책을 읽어줬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이 습관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처음에는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점차 글밥이 많은 책으로 넘어갔고, 지금은 제가 읽는 책도 아이와 함께 읽고 있습니다.
제가 세운 원칙은 명확했습니다. 첫째, 학습만화는 절대 사주지 않는다. 둘째, 아이가 읽고 싶다고 하는 책은 식비를 아껴서라도 꼭 사준다. 다만 한 달 도서 예산이 정해져 있어 새 책보다는 중고 서적을 주로 구입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학습만화란 교육적 내용을 만화 형식으로 구성한 책을 의미합니다. 처음에는 한두 권 허용했는데, 아이가 재미있는 장면만 골라보고 내용은 제대로 읽지 않더라고요. 제가 직접 같이 읽어보고 질문해 봐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짧은 글에만 익숙해져서 조금만 글이 길어져도 읽으려 하지 않아 바로 금지시켰습니다.
대신 주말마다 도서관이나 서점을 함께 방문했습니다. 서점에 가자고 하면 아이가 정말 좋아했고, 한 번 가면 두세 시간은 각자 책을 읽다가 집에 왔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도 아이는 자기가 읽을 책을 들고 다니고, 학교 도서관에서 재미있게 읽은 책은 저한테 추천도 해줍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교 시기에 형성된 독서 습관은 평생 독서량과 직결된다고 합니다(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실제로 제 아이를 보면 이 말이 실감 납니다.
독서 습관의 가장 큰 장점은 어휘력과 이해력이 자연스럽게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아이는 책을 통해 다양한 표현을 접하고, 문장 구조를 익히며,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갑니다. 수학 문제를 풀 때도 문제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독해력이 필요한데, 독서를 많이 한 아이는 이 부분에서 확실히 유리합니다.
물론 학습만화를 완전히 금지한 건 아닙니다. 아이가 용돈으로 산 학습만화는 쉬는 시간에 보는 것까지 터치하지 않습니다. 다만 학습만화가 아이 독서량의 대부분을 차지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게 핵심입니다.
초등학교 시기는 성적을 만드는 시기가 아니라 습관을 만드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조금씩 연산을 하고, 짧게라도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시간. 그 작은 반복들이 쌓여 아이에게 큰 힘이 된다는 걸 저는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완벽하게 해내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독서 습관만큼은 제대로 잡아준 게 지금도 큰 보람으로 남습니다. 앞으로도 아이와 함께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좋은 습관을 만들어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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