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적으로 좋은 부모가 되려면 육아서를 많이 읽고 강연을 들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가장 중요한 건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제 안의 해결되지 않은 상처를 들여다보는 일이었습니다. 32년 경력의 심리극 상담 전문가 김영한 소장은 "부모들이 몰라서 못 키우는 게 아니라, 어릴 때 상처가 해결되지 않아 아이에게 고스란히 연결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저 역시 아이를 키우며 이 말이 얼마나 정확한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아이가 작은 실수를 했을 뿐인데 필요 이상으로 화를 냈던 순간, 그건 아이 때문이 아니라 제 어린 시절의 상처가 터져 나온 것이었습니다.
부모의 상처가 아이에게 대물림되는 이유
심리극 상담에서는 부모의 과거 상처와 현재 양육 방식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아냅니다. 여기서 심리극이란 과거의 특정 장면을 재연하며 억눌렀던 감정을 표출하고 치유하는 상담 기법을 의미합니다(출처: 한국심리극학회). 실제 사례를 보면, 어릴 때 폭력에 노출됐던 한 아버지는 자신이 아버지처럼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에게 완전히 무관심한 부모가 되어 있었습니다. 훈육을 전혀 하지 않고, 아이가 12시간 게임을 해도 방에만 들어가 누워 있었습니다.
심리극 상담에서 그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쏟아냈습니다. "아빠, 때리지 마세요. 엄마도 때리지 마세요." 40대 남성이 어린아이처럼 울면서 표현했고, 13년 결혼 생활에서 아내에게도 한 번도 꺼내지 못했던 상처였습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아들도 아버지의 고통을 이해하게 됐고, 이후 부자 관계가 크게 개선됐습니다.
저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는 분이었고, 집안 분위기는 늘 긴장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아빠처럼 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했지만, 정작 제 딸이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자연스럽게 물어보는 것조차 어색했습니다. 뇌가 자동으로 "집에서는 말하는 게 아니야"라고 신호를 보냈던 겁니다. 한 번은 여덟 살 딸이 떼를 쓸 때 엉덩이를 내리쳤는데, 그 순간 제 모습이 아버지와 똑같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셀프 심리극으로 내 마음 들여다보기
전문 상담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김영한 소장이 제안하는 '셀프 심리극'은 자기 내면의 부정적인 마음을 분리하고 대화하는 기법입니다. 저는 실제로 빈 의자를 마주 놓고 앉아, 제 안의 부정적인 마음에게 말을 걸어봤습니다. "너 왜 자꾸 나를 방해해? 나는 소리 지르고 싶지 않은데, 네가 자꾸 올라오니까 아이에게 하고 싶지 않았던 행동이 나오잖아."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계속하다 보니 제 감정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를 때 0.1초라도 빨리 알아채는 것이 핵심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부정적인 마음이 들어오는 순간 그대로 행동해 버립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먼저 인식하고 "너, 오늘은 안 받아줄 거야"라고 스스로에게 선언하면, 실제로 행동이 달라집니다.
구체적인 셀프 심리극 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 부정적인 마음이 올라올 때 즉시 알아차리기
- 빈 의자에 그 마음이 앉아 있다고 상상하고 대화하기
- "너는 내가 받아주지 않을 거야"라고 단호하게 선언하기
이 과정을 반복하면 부정적인 마음과 실제 행동 사이에 작은 틈이 생깁니다. 그 틈 덕분에 저는 예전보다 한 박자 늦게 반응할 수 있게 됐고,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연기하는 것처럼 일부러 웃으며 아이에게 다가갔는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하다 보니 자연스러워졌습니다.
과잉보호와 방관, 모두 상처에서 시작된다
육아 문제는 폭력만이 아닙니다. 과잉보호도 부모의 상처에서 비롯됩니다. 한 어머니는 중학교 1학년 아들에게 양말, 속옷, 티셔츠를 매일 아침 깔아주고, 심지어 밥을 떠먹여 줬습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는데, 심리극을 통해 이유가 드러났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 부모가 너무 바빠서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했고, 초등학교 4학년 때 고열로 죽다 살아난 경험이 있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돌봄 결핍이 아이에게 쏟아진 것입니다.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이 이렇게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마음이 아이를 거의 분신처럼 여기게 만들었습니다. 심리극에서 할머니 역할을 맡은 상담사가 "너 아프면 엄마가 내일 일 안 나가고 네 옆에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자, 그 어머니는 펑펑 울었습니다. 평생 듣고 싶었던 말을 그제야 들은 겁니다.
이후 그녀는 아이에게 스스로 할 기회를 주기 시작했고, 아들도 점차 자기표현을 하게 됐습니다. 제 경우에도 비슷한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이의 숙제를 미루는 모습을 보면 유독 예민하게 반응했는데, 그건 어릴 적 "왜 이것도 못하니?"라는 말을 들으며 위축됐던 제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 상처를 인정하고 나니, 아이의 느린 템포를 조금 더 기다려줄 수 있게 됐습니다.
감정 소통이 건강한 멘털의 핵심이다
또래보다 건강한 멘털을 가진 아이로 키우려면 감정 소통이 제일 중요합니다. 여기서 감정 소통이란 단순한 대화가 아니라, 아이의 마음속으로 깊이 들어가 공감하는 대화를 의미합니다. 아이가 "짜증 나", "됐어"라고 말할 때, 부모는 당황하며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실은 아이가 표현할 수 있는 방식이 그 정도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때 "뭐가 짜증 났니?"라고 들어가 줘야 하는데, 대부분 "왜 짜증을 내?"라며 역공격 합니다.
한국아동청소년정신의학회에 따르면, 부모와의 정서적 소통이 원활한 아이일수록 우울감과 불안감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아동청소년정신의학회). 저 역시 예전에는 아이가 속상해하면 "괜찮아, 별거 아니야"라며 빨리 정리하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위로가 아니라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은 제 마음이었습니다. 요즘은 아이가 울면 "많이 속상했구나"라고 먼저 말합니다. 해결책은 나중 문제입니다. 신기하게도 아이의 표정이 조금씩 풀립니다.
감정 소통의 핵심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아이의 감정 표현을 부정적으로 듣지 않기
- 듣고 싶은 대답만 기대하지 않기
- 아이가 말할 때 끝까지 귀 기울이기
좋은 부모가 되는 길은 거창한 교육법에 있지 않습니다. 매 순간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려는 노력, 그게 전부입니다. 청소년기로 끝나는 게 아니라 성인이 돼서도 계속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자녀가 가족을 이뤘을 때 그 선한 영향력이 다음 세대로 이어집니다.
저는 아직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가끔 욱하고, 후회하는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습니다. 아이를 바꾸기 전에 저를 먼저 돌아보는 게 시작이라는 것. 제 안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노력이 결국 아이에게 가장 값진 선물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돈이 들지 않는 이 노력, 어쩌면 가장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투자일지도 모릅니다. 오늘부터라도 제 마음을 들여다보고, 아이의 감정에 한 발짝 더 다가가 보려 합니다. 그 작은 변화가 쌓여 언젠가 아이가 행복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아이 역시 좋은 부모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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