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풍도 안 가는 학교가 요즘 절반이 넘는다고요?" 처음 이 통계를 접했을 때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서울 지역 초등학교 605곳 중 절반 이상이 2025년 현재 1 일형 현장 체험 학습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는 서울시교육청의 조사 결과를 보고, 제 아이가 "우리 학교는 소풍 안 간대요"라고 말했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단순한 일정 변경이 아니라, 우리 교육 현장에 구조적인 문제가 생긴 것이었습니다.
교사 책임과 현장체험 중단의 실체
2022년 11월 속초 현장체험학습 사고 이후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버스에 치여 사망한 사고에서, 인솔 교사 2명이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되어 금고 6개월 선고유예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업무상 과실치사'란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해 타인을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 적용되는 형사 처벌 조항입니다(출처: 법제처).
이 판결 이후 교사들 사이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사고까지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가"라는 두려움이 확산되었습니다. 제가 학부모 간담회에서 만난 한 초등교사는 "버스 기사 음주 여부, 타이어 상태, 학생 인원 파악, 식중독 예방, 응급 상황 대비까지 모두 담임 혼자 감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고가 나면 교장도, 교육청도 책임지지 않고 저만 법정에 서게 된다면, 차라리 교실 안에 있는 게 안전하죠"라고 솔직히 털어놓았습니다.
실제로 2023년 598곳이었던 서울 내 현장체험학습 실시 학교가 2025년 309곳으로 약 48.5% 급감했습니다(출처: 서울시교육청). 불과 2년 사이 절반이 사라진 셈입니다. 여기서 '현장체험학습'이란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활동으로, 1 일형 소풍부터 숙박형 수학여행까지 포함하는 법정 교육과정입니다. 숙박형 체험학습 역시 비슷한 추세로 감소했고, 특히 초등학교에서 더 가파른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저는 아이의 학교운영위원회에서 몇 년간 체험학습 재개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한 6학년 학생은 "왜 우리는 가지 못하느냐"며 교장실 앞에서 시위라도 하고 싶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교육 현장의 온도가 얼마나 냉각되었는지 실감했습니다. 교사들은 학생 안전을 위한 선택이라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법적 책임 구조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안전 관리 체계의 공백과 해결 방향
2024년 통과된 학교안전법 개정안은 교사에게 일정한 면책권을 부여했습니다. 여기서 '면책권'이란 예방과 안전 조치 의무를 다한 경우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법적 보호 장치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안전 의무를 다했다"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사고 발생 시 여전히 교사 개인이 입증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입니다. 제가 참석한 학부모 간담회에서 한 법률 전문가는 "면책 조항이 있어도 구체적 판단 기준이 없으면 결국 법원의 사후 판단에 맡겨질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습니다.
현장 교사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책임의 범위뿐만이 아닙니다. 민원 대응도 큰 부담입니다. 한 교사는 "물통을 안 가져온 학생에게 물을 사주면 '왜 그 애만 예뻐하냐', 안 사주면 '어떻게 목마른 애를 방치하냐'는 민원이 들어옵니다. 도시락을 싸 오라 하면 '워킹맘이 바쁜데', 음식을 사 먹으라 하면 '테마파크 음식이 비싼데', 식당에서 먹으라 하면 '맛없는데 왜 그걸 먹이냐'는 항의가 3~4개월 뒤에 들어옵니다"라고 호소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들으며 솔직히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학부모로서 안전을 요구하는 것과, 교사에게 과도한 완벽함을 요구하는 것 사이의 경계가 어디인지 고민하게 되었죠.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구조적 개선이 필요합니다.
- 교육청 차원의 전문 안전 인력 배치: 버스 점검, 기사 관리, 응급 상황 대응을 전담하는 인력을 지원해야 합니다
- 명확한 책임 범위 규정: 교사-학교-교육청 간 책임 분담 기준을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합니다
- 표준화된 체험학습 프로그램: 교육청이 검증된 프로그램과 업체를 제공하여 개별 교사의 부담을 줄여야 합니다
한 교장은 "학년 구성원이 모두 합의해야 체험학습을 가는데,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가지 않는 것으로 결정합니다. 교사를 강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제 아이가 다니는 학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박물관·미술관 교육을 공부한 학부모로서 아이들에게 교실 밖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압니다. 낯선 공간에서 친구와 협력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며, 자립심과 사회성을 배우는 과정은 교과서로 대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구조에서는 그 가치를 아무리 강조해도 교사 개인의 두려움을 넘어서기 어렵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에서 "어떻게 함께 책임질 것인가"로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안전은 타협할 수 없지만, 경험 없는 안전이 아이들을 더 강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교육청이 프로그램과 인력을 지원하고, 명확한 책임 분담 체계를 마련하며, 학부모는 합리적인 기대 수준을 유지하는 것. 이 세 주체가 각자의 역할을 다할 때, 비로소 교사도 학생도 안심하고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저는 언젠가 제 아이가 "엄마, 오늘 소풍 정말 재미있었어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날이 다시 오길 바랍니다. 그 웃음 뒤에는 한 명의 교사가 떠안은 불안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나눈 책임과 시스템이 있기를 바랍니다. 안전과 경험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초등 부모의 시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초등 영어 로드맵 (독서, 품사, 문장구조) (1) | 2026.03.02 |
|---|---|
| 서울대생 공부법의 비밀 (초등습관, 슬럼프극복, 메타인지) (1) | 2026.03.01 |
| 원서 읽기 효과 (단어 구조화, 음원 활용, 우리말 독서) (0) | 2026.02.28 |
| 공부 포기시키는 말 (사춘기 대화법, 감정 수용, 예방적 훈육) (0) | 2026.02.27 |
| 서울대 의대생의 초등시절 (선행, 슬럼프, 부모역할) (0) | 2026.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