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여행 셋째 날, 알람 소리에 잠이 깼을 때, 아직 어슴푸레한 새벽빛이 창밖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 순간 문득 ‘오늘은 분명 특별한 하루가 될 거야’ 하는 예감이 들었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머릿속에 수없이 그렸던 장면들, 설레었던 마음들이 어느새 현실이 되어 있었다. 도쿄는 생각보다 훨씬 다채롭고, 또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도시였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창밖 풍경이 서서히 바뀌었다. 도심의 빌딩 숲이 멀어지고, 초록빛 들판과 아기자기한 골목이 이어졌다. 저 멀리 산자락이 모습을 드러내고, 바람이 차창을 스치며 들어왔다. 차 안은 조용했고, 그 속에서 나는 여행의 시작을 깊게 느꼈다. 여행은 단순히 장소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새롭게 채워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사쿠사 센소지
센소지에 도착했을 때, 입구에 걸린 붉은 등록이 먼저 시선을 압도했다. 그 크기와 묵직함이 마치 ‘여기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다른 시간이 시작된다’고 말하는 듯했다. 계단을 오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노점에서 나는 달콤하고 짭조름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여기 정말 조용하고, 또 신기하다.” 내가 속삭이듯 말하자, 옆에 있던 친구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돌계단을 오를 때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었다. 천천히 걸어야만 보이는 풍경이 있다는 걸, 여행하면서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대웅전 앞에 서자 햇빛이 붉은 기와 위에서 반짝 반짝였다. 향 냄새 섞인 공기 속에서 느껴지는 사찰의 향기는, 익숙한 듯 또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유명 관광지답게 너무 많이 사람들이 있어서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사찰보다는 온통 사람 속에 파 묻힌 모양이었다. 조금 속상했지만 친구가 열심히 구도를 잡아가며 인생샷을 만들어주었다.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았다.
이마한
골목 안에 숨어 있는 듯한 작은 입구였지만, 문을 열자 따뜻한 기운이 반겨주었다. 다다미 방에 앉아 메뉴판을 펼치자, 기대감과 설렘이 동시에 밀려왔다. 일본 여행을 많이 다녀봤지만 스키야키를 먹어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기모노를 입으신 분들이 서비스를 해주셨는데.. 무릎을 꿇고 일본의 전통 방식으로 음식을 내어주셨다. 처음에는 살짝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대접받는 분위기가 들었다.
스키야키가 나오자 윤기가 흐르는 소고기 위로 김이 살짝 올라왔다. 오래된 시간과 장인의 손길이 함께 녹아 있는 듯한,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향이었다. 첫 젓가락을 입에 넣었을 때, 부드러운 고기와 달콤한 국물이 입안에서 어우러졌다.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켰다. 그 순간 ‘이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마음이 따뜻해지는 경험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친구가 “여기 진짜 오길 잘했다”라고 웃으며 말했을 때, 나도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말없이 음미하는 그 순간이 여행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처음엔 가격이 꽤나 있어서 망설였는데.. 안 왔으면 후회했을 최고의 맛집이었다.
도쿄크루즈
저녁이 되자 우리는 오다이바로 향했다. 미리 예약한 시간에 맞춰 도쿄크루즈를 타러 갔다. 배 위에 올라서자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짭조름한 바다 냄새와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그리고 배가 흔들릴 때 나는 미세한 설렘이 마음속에 스며들었다.
시내 한복판을 지나면서 멋진 시티뷰도 보았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준 친구에서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금세 레인보우 브리지 보였고, 저녁 노을빛에 물들었다. 하늘은 붉고 주황빛이 섞여 그림처럼 펼쳐졌다. 사진에는 그 모습들이 다 담기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장면을 오래도록 눈에 담기로 했다.
그 순간 주변 사람들도 모두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행은 결국 같은 순간을 나누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마치며
도쿄에서 이동시간이 많아서 걷기를 극기훈련처럼 한 느낌이었다. 구경하고 싶은 곳도 많아서 동선을 최소화한다고 하는 했지만, 계획한 스케줄대로 딱딱 맞춰지진 않았다. 그런데 뭐 이것 또한 여행의 묘미라고나 할까? 또 중간중간 새로운 에피소드가 생기고, 별거 아닌 소소한 소확행에 그냥 웃게 되는 것이 여행이 아닐까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크루즈를 타고 도쿄 한복판을 보며 느낀 황홀함은 아직 잊히지 않는다. 도쿄가 내게 준 인상은 정말 강렬했다. 많이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흘러갔다. 도쿄는 나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남겼고, 나는 그 이야기를 다시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