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라는 도시는 늘 뭔가를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동시에, 그 기대를 비틀어버리듯이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들을 던져주기도 한다. 이번 여행 2편은 그런 순간들로 가득했다. 계획했던 것도 있고, 우연히 발길이 닿은 곳도 있었는데,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그 어지럽고 조각조각 흩어진 장면들이 오히려 도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팝마트
하라주쿠 거리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여기는 손꼽아 기다리던 곳 중 하나이다.
도쿄에 가면 하라주쿠에 가면 팝마트에 가서 꼭 라부부 키링들을 만나고 말 테다!
평소에 피겨에 큰 관심은 없었는데.. 요즘 라부부를 모르면 이상한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오픈런을 해도 라부부를 보기가 너무 힘들다. 하라주쿠 팝마트에서는 라부부를 볼 수 있을까.. 두근거렸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화려한 캐릭터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들어왔다. 벽면을 가득 채운 박스들, 랜덤으로 뽑는 블라인드 피겨의 진열대. 아이보다도 어른들이 더 열광하며 상자를 고르고 있었다. 나도 어느새 손에 작은 박스를 하나 들고 있었다. 열어보는 순간의 두근거림, 그 짧은 떨림이 왜 이렇게 짜릿한지.
열어본 건 원래 바라던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뭐 상관없었다. 그냥 여기 온 자체로 굉장히 흥분되고 재미있었다. "이게 바로 여행이지." 우연히 손에 들어온 작은 인형 하나가 오늘 하루를 굉장히 특별하게 만들어줬다.
블루보틀
하라주쿠에서 조금 걸어 내려가면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오모테산도가 나온다. 세련된 건물들, 조금은 차분한 거리. 그 안쪽에 블루보틀 카페가 있었다. 사실 한국에도 많으니 굳이 여기까지 와서 마셔야 하나 싶었지만, 그래도 도쿄의 블루보틀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 발길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서니 창이 크게 트여 있어 햇살이 가득 들어왔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자, 창밖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오가는 사람들,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현지인들, 느릿느릿 흐르는 시간. 커피 맛은 솔직히 특별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의 공기, 분위기, 창틀 너머의 작은 장면들이 커피를 전혀 다른 맛으로 바꿔놓았다.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아, 내가 지금 도쿄에 있구나.’ 하는 실감이 밀려왔다. 결국 커피보다는 풍경을 마신 셈이었다.
넘버슈가
길을 걷다 우연히 들어간 작은 가게가 있었다. 간판에는 넘버슈가(Numero Sugar)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수제 생캐러멜을 만든다는 작은 공방 같은 분위기의 가게였다.
안으로 들어서니 달콤한 향기가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직원이 포장을 풀어 한 조각을 건네주는데,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순간 세상이 멈춘 듯했다. 단순히 달기만 한 게 아니라, 부드럽게 퍼지는 크림 같은 감촉과 고소함이 뒤섞여 감정을 건드렸다. 어릴 적 겨울, 난롯불 앞에서 먹던 사탕 같은 따뜻한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몇 개를 더 사서 작은 종이봉투에 담았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이런 작은 단맛이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준다. 도쿄에서의 하루가 갑자기 더 다정하게 느껴졌다.
롯폰기힐즈 전망대
밤이 되자 도쿄는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된 것 같았다. 화려하게 빛나는 거리와 건물들. 나는 도쿄타워를 보기 위해 롯폰기힐즈 전망대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발걸음을 옮기자, 도쿄의 아름다운 야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도쿄는 정말 정말 크구나.’ 단순한 감탄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차들이 반짝이며 움직이고,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은 마치 하나의 거대한 별자리를 보는 것 같았다.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카메라에 그 모습이 다 담기지 않았다. 렌즈로 담을 수 없는 화려한 불빛 들. 내 눈에 그리고 마음에 많이 담아 가기로 했다. 한참을 서서 바라보다가, 내가 정말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가슴이 벅차올랐다. 도쿄는 다른 도시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나를 매료시키고 있었다.
츠타야 서점과 스타벅스
여행 마지막 날, 일부러 조금 여유를 두고 찾은 곳은 다이칸야마였다. 번잡한 시부야나 신주쿠와는 전혀 다른,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동네. 그 안에 자리한 츠타야 서점은 마치 숲 속 도서관처럼 고요했다.
책장 사이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그리고 책 냄새. 잠시 앉아 책장을 넘기는데, 여행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서점 한쪽에 자리한 스타벅스에 앉아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특별할 것 없는 스타벅스였지만, 공간이 주는 여유 덕분에 그 평범함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사람들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창밖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걸 보며 ‘여기서라면 하루 종일 있어도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마치며
일본의 상징답게 도쿄는 거대한 도시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내가 기억하는 건 아주 아기자기한 순간들이다. 팝마트에서 작은 피겨를 열던 두근거림, 블루보틀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커피 한잔을 하던 조용한 시간, 넘버슈가에서 입안에 퍼지던 달콤한 순간, 롯폰기힐즈 전망대에서 본 도쿄 시내의 작은 불빛들, 다이칸야마에서의 유유자적 보낸 오후의 시간.
거창한 랜드마크나 화려한 쇼핑보다는, 이런 조각 같은 아기자기한 순간들이 결국 나를 다시 도쿄로 향하게 만든다. 이번 여행은 분명히 2편까지 썼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도쿄의 여행기가 많이 남아있다. 기대하셔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