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라비에 발을 디딘 순간, 코끝에 묘한 습기와 흙냄새가 스며들었다. 그냥 공항을 나오기 전과는 전혀 다른 공기였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아, 여기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도시의 소음 대신 자연이 숨 쉬는 소리가 나고 있었다. 설렘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차올랐다.

에메랄드 풀
에메랄드 풀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길이라기보다 숲 속을 헤쳐가는 느낌이었다.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머리 위로 내려오는 빛줄기,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 그 모든 것이 한데 섞여 걷는 동안 내가 다른 세계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왔다.
도착했을 때, 숨이 막혔다. 눈앞에 펼쳐진 건 말 그대로 ‘에메랄드빛 호수’. 사진이나 영상으로 본 것보다 훨씬 깊은 색이었다. 초록과 파랑이 섞인 물빛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한 발, 또 한 발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차갑지만 기분 좋은 온기가 온몸에 퍼졌다. 나는 그대로 앉아 파도도 아닌 잔잔한 물결을 바라봤다. 그냥 그 자리에 있고 싶은, 시간을 멈추고 싶은 순간이었다.
블루라군
조금 더 걷자 숲 속에 숨겨진 블루라군이 나타났다. 도착하는 순간, 숨이 잠깐 멈췄다. 그곳은 에메랄드 풀보다 더 깊고, 더 차분한 푸른빛이었다. 마치 하늘이 물속으로 내려온 듯한 느낌이었다.
손을 물에 담그지도 않고 오래 바라보았다. 사람이 만들어낸 게 아니라, 그냥 자연이 준 신비로움이었다. 잠깐이지만 마음이 비워지고, 그냥 ‘있음’ 자체로 충분해지는 순간이었다.
고담 키친
친구가 음식에 매우 까다로운 편이라.. 또 향신료 냄새에 너무 민감해서 검색을 열심히고 신중하게 고른 음식점이었다. 태국음식을 한국인도 거부감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이곳은 태국 음식점인데, 묘하게 한국인 입맛을 저격했다.
태국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팟타이부터 맛보았다. 정말 이것은 맛있다를 넘어 “이건 그냥 내가 찾던 맛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방콕에서도 팟타이를 많이 먹어 보았지만, 끄라비에서 만난 이곳은 면발이 더 쫄깃하고 양념이 촉촉하게 배어있었다. 요리에 들어간 숙주랑 땅콩, 레몬의 조화가 정말 최고의 밸런스를 만들었다. 친구가 다른 요리들도 너무 괜찮다며 거부감 없이 맛있게 먹는 모습에 내가 다 뿌듯하고 기뻤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맛집이라기보다 ‘편안함’이었다. 여행하면서 현지 음식만 먹다 보면 때론 입이 지칠 때가 있는데, 고담 키친은 전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 한국인 여행객에게 특히 사랑받는 이유가 있다.
마사지코너
저녁에도 돌아다니다 발이 아프면 발 마사지도 받고, 1일 1 마사지를 실천하고 있었다. 또 어떤 마사지 샵이 있을까 찾던 와중에 여행자들의 후기를 꼼꼼히 살펴봤다. 마사지를 너무 시원하게 잘한다는 곳을 찾았는데... 비용도 합리적이라고 하였다.
친구들과 예약을 하고 마사지샵을 찾아갔다. 화려한 건물의 큰 마사지샵은 아니었지만, 안에 들어서자 은은한 아로마 향이 풍겼다. 하루 종일 걷고 땀 흘린 몸이 “그냥 넘어갈 순 없어”라고 말하는 듯했다.
발마사지를 받는 동안, 처음엔 조금 아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픔’이 사라지고 몸 전체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음악과 향, 그리고 손끝의 압력이 합쳐져 하루의 긴장을 모두 씻어내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스르르 잠에 들기도 했다. 여기는 모두를 만족시킨 끄라비 최고의 마사지 샵이었다. 정말이지 나도 모르게 “와…” 하고 감탄이 나왔다. 내일도 일정이 된다면 또 오고 싶은 곳이었다. 여기는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하루를 마치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 머릿속에 오늘 하루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에메랄드 풀의 초록빛, 블루라군의 차분한 푸른빛, 고담 키친의 따뜻한 음식, 마사지코너의 부드러운 손길. 그 모든 순간이 작은 파편처럼 마음속에 박혔다.
여행은 사실 거창한 것이 아니다.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감정이다. 오늘 나는 그 감정들을 가득 안고 돌아온 셈이다. 그리고 끄라비 여행의 첫날은 내게 그렇게 ‘기억될 하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