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밝자 창밖엔 은은한 빛이 스며들었다. 평소라면 여행 둘째 날의 피곤함이 먼저 다가오지만, 오늘은 달랐다. 창밖의 공기는 촉촉했고, 코끝엔 아직 밤의 습기가 남아 있었다. 나는 커튼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바라보다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오늘은 뭔가 다를 거야’ 하는 기분이 들었다. 가슴이 조금 두근거렸다.
호텔 로비로 내려가는 길, 발걸음을 일부러 천천히 옮겼다. 작은 소리들이 들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바람에 부딪히는 나뭇잎 소리, 그리고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웃음소리까지. 모두가 어우러져 여행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홍섬투어
보트 위에 올랐을 때, 짙은 바다 내음이 먼저 나를 맞았다. 아침 햇살은 물 위에서 반짝이며 손끝을 간질였고, 바람은 부드럽게 내 얼굴을 스쳤다. 갑판에 서서 멀리 보이는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는데, 마음이 서서히 풀렸다. 이 순간이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을 거라는 것을 직감했다.
첫 번째 정착지에 도착했을 때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눈앞에는 ‘에메랄드빛 바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완벽한 색이 펼쳐졌다. 실제로 보면, 색감이 사진 속과는 달랐다. 훨씬 깊고, 은은하게 빛났다. 한 걸음 물속으로 들어가자 차갑지만 따뜻하게 다가오는 물이 발끝을 감쌌다. 나는 한참 그 자리에서 앉아 물결과 파도 소리를 듣고 있었다. 친구도 옆에서 말없이 웃었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눈빛으로 그 순간을 공유했다.
라레이그릴
투어가 끝나고 우리는 라레이그릴로 향했다. 바닷가 끝에 자리한 그곳은 이미 노을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다행히 창가 쪽 테이블이 예약되어 있었다. 자리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니, 하늘은 서서히 붉게 물들고 있었다.
첫 접시에 담긴 새우구이에서 구수한 향이 피어올랐다. 이어 나온 해산물 카레는 코코넛 향과 함께 묵직한 맛을 전했다. 한 숟갈 입에 넣자, 입안이 환하게 열리는 기분이었다. 친구는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이 맛, 잊지 못할 거야.” 나도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말이 필요 없었다. 바다와 노을, 그리고 그 맛이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뿌담야시장
저녁이 되자 우리는 야시장 구경을 하러 가기 위해 툭툭이를 탔다. 시장 입구에서부터 갓 구운 생선과 향신료 냄새들이 진동을 했다. 신나는 노랫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목소리와 웃음, 흥정 소리가 섞여 벌써부터 신이 난 느낌이 들었다.
처음 들린 곳은 과일가게였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망고스틴을 먼저 샀다. 껍질을 벗기자 뽀얀 핑크빛의 알맹이가 나왔다. 얼른 먹어보았는데.. 상큼하면서도 부드러운 과즙이 입안을 가득가득 찼다. 친구도 나와 같이 미소를 지었다. “진짜 맛있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그 담에 간 곳은 이상하게도 수영복을 파는 옷가게였다. 우리는 한참 구경을 하다가 결국엔 수영복을 하나씩 사서 이쁘게 입고 사진을 남겨 보기로 했다. 맛있는 음식이나 땡모반을 먹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코끼리 바지도 아닌 수영복을 사서 참 웃겼지만 우리는 매우 만족했다.
프라낭 케이브 비치
작은 보트를 타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자 햇살이 우리를 비쳤다. 물결 위에 비친 빛들이 마치 동국 안을 비추는 보석 같은 느낌을 받았다. 발끝에 전해지는 물의 차갑지만 신선하게 다가왔다.
동굴 안에 들어서자 평화롭고 고요했다. 파도 소리만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오래도록 서 있었다. 이번에야 말로 사진으로 담기 어려운 신비로움이 있었다. 친구도 조용히 옆에 서서 동굴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서로 말없이 그 순간을 마음속에 기록하고 있었던 것 같다. 바깥으로 나서자, 붉은 노을이 바다를 물들이고 있었다. 그 장면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항상 끄라비를 생각하면 꼭 떠오르는 모습이다.
여행을 마무리하며
친구는 태국의 방콕도 한 번도 안 가봤다고 해서 처음에는 방콕이나 파타야를 여행지로 생각했다. 그런데, 좀 더 특별한 곳으로 가보자며 비행기를 2번이나 타는 경유를 하며 힘든 여정이지만 우리는 좀 더 새로운,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지만 일상을 벗어난 색다른 곳을 원했던 것 같다. 홍섬에서의 여유로웠던 일정들, 카메라만 들이대면 그냥 그림이 되는 섬들에 매료되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맛있는 음식, 친절한 사람들, 노을 지는 바다 풍경까지 뭐 하나 흠잡을 때 없는 완벽한 여행지가 아닐까 싶다.
여행은 결국 거창한 것이 아니라, 이런 작은 순간들의 모음이다. 오늘 나는 그 순간들을 가슴 깊이 간직했다. 끄라비의 모든 날들은 나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