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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문경 여행기 2편: 고모산성, 봉명산 출렁다리, 카페 가은역

by 크리m포켓 2025.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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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갈수록 마음이 예민해진다.
아침 공기에는 이슬 냄새가 배어 있고, 길가의 코스모스는 고개를 숙인다.
그날 나는 아무 이유도 없이 문득 문경이 떠올랐다.
바람이 부는 날이면, 낯선 길 위에서 혼자 걷고 싶어지는 그런 기분.
아마도 그날이 딱 그랬던 것 같다.

목차

  • 고모산성
  • 봉명산 출렁다리
  • 카페 가은역
  • 돌아오는 길에

경관이 참 멋스러웠던 고모산성

고모산성 

고모산성에 도착했을 때, 공기가 달랐다.
도시에서 맡던 공기와는 전혀 다른, 조금 더 단단하고 묵직한 냄새였다.
차 문을 열자마자, 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그 바람에 실린 낙엽 냄새가 마음을 단번에 흔들었다.

“아, 가을이 정말 왔구나.” 그 말이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산성 입구부터 오르는 길은 생각보다 가팔랐다.
숨이 차오르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가끔은 이런 ‘헉헉거림’이 좋다. 몸이 힘들면 머리가 잠시 멈추니까.
그때서야 마음속에 쌓여 있던 잡생각들이 천천히 풀려나갔다.

길 옆으로는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쌓여 있었고, 그 위로 햇살이 부서져 내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잎사귀들이 가볍게 흔들리며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마치 바람의 웃음 같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어느 순간 시야가 확 열렸다. 그곳이 바로 고모산성의 꼭대기였다.
멀리까지 펼쳐진 산줄기들이 겹겹이 이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잔잔한 마을과 들판이 따뜻하게 누워 있었다.

나는 그대로 돌담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가만히 숨을 고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햇살이 눈부셨지만, 그 눈부심이 이상하게 따뜻했다.
바람은 계속 불었고, 옷깃 사이로 스며드는 그 차가움이 왠지 위로처럼 느껴졌다.

늘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고 믿었는데, 이 고요한 산 위에서 보니
멈추어 서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산 아래로 내려오는 길에, 누군가 떨어뜨린 단풍잎 한 장이 바닥에 나풀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걸 괜히 주워서 주머니에 넣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오늘의 이 공기와 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간직하고 싶어서였다.

봉명산 출렁다리

다음으로 향한 곳은 봉명산 출렁다리였다.
멀리서 봤을 때는 그저 다리였는데, 막상 가까이 가니 생각보다 높았다.
발을 올리자마자 다리가 살짝 흔들렸다.
심장이 쿵, 하고 뛰었다. 괜히 웃음이 났다. 겁이 나면서도 재밌는 그 묘한 기분.

중간쯤 갔을 때, 다리가 바람에 더 크게 흔들렸다.
뒤에서 친구들이 “야, 무서워!” 하며 소리쳤다.
나도 모르게 같이 웃었다. 그 순간,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로 파고들며 시원하게 스쳤다.
가을 냄새가 났다. 조금 차갑고, 조금 외롭고, 그래서 더 맑은 냄새.

다리를 다 건너고 나서 뒤돌아봤다.
방금 전의 흔들림이 이제는 그리웠다.
그래, 인생도 그런 거 아닐까... 조금 흔들리더라도 그 안에서 웃을 수 있다면, 그게 여행이고, 삶이지 싶었다.

카페 가은역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가은역 카페’였다.
폐역을 개조해 만든 공간이라 그런지, 역 이름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철길 위로 잡초가 살짝 자라 있었고, 햇살이 레일 위를 따라 길게 번졌다. 그 모습이 참 예뻤다.

문이 삐걱 열리는 소리를 내며 들어서니, 구수한 커피 향이 반겼다.
사람이 많지 않아 좋았다.
벽에는 오래된 흑백사진들이 걸려 있었고, 창밖으로는 느리게 흘러가는 구름이 보였다.

나는 따뜻한 라테를 시켜놓고 창가에 앉았다.
컵을 두 손으로 감싸니 온기가 전해졌다. 그 온기 속에서 여러 생각이 스쳤다.
기차가 멈춘 자리에서 나는 여전히 ‘움직이는 마음’을 느끼고 있었다.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내가 교차하는, 이상하게도 따뜻한 순간이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길을 따라 몇 걸음 걸었다. 발밑에서 자갈이 사각거렸다.
“이 길을 따라가면 어디로 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어디든 좋을 것이다.
오늘 같은 날이라면, 어디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차 안에서 바라본 산들은 점점 어두워졌고, 하늘은 주황빛으로 물들었다.
문경의 하루는 그렇게 내 마음속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무언가를 계획하지 않아도 좋았고, 그저 느리게 걷는 시간만으로도 충분했다.
고모산성의 바람, 출렁다리의 웃음, 가은역의 커피 향.
그 세 가지가 지금도 머릿속에 선명하다.

도시로 돌아와도 그 향기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가끔 눈을 감으면, 바람결에 스치는 단풍 냄새가 아직도 느껴진다.
아마 그래서 여행은 ‘끝’이 아니라 ‘남음’인 것 같다.

문경의 가을은 그렇게, 내 안에 천천히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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