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따라 마음이 조금 복잡했다.
뭐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이유 없이 무기력한 날들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창문 밖으로 흘러가던 구름을 보다 문득 떠나고 싶어졌다.
멀리도 아니고, 너무 번잡하지도 않은 곳. 그래서 택한 곳이 청도였다.
두 시간 남짓 달리니 도시의 소음이 점점 멀어졌다. 그 대신 창문 너머로 초록빛 들판이 펼쳐졌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괜히 더 잘 어울리던 그 길.
왠지 오늘 하루는 좀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목차
- 군루지파크
- 이따가다
- 풍각한우한돈 식육식당
- 돌아오는 길
군루지파크
첫 목적지는 군루지파크였다.
‘국내 최장 트랙’이라는 말보다 나를 더 설레게 한 건, 그냥 단순히… 바람을 가르며 달려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처음 헬멧을 쓰고 루지 위에 앉았을 때, 살짝 긴장됐다.
손에 힘을 주고 브레이크를 쥐었는데, 직원분이 “처음엔 무서울 수 있지만, 타다 보면 웃고 계실 거예요” 하더라.
그 말이 괜히 머릿속을 맴돌았다.
출발하자마자 바람이 얼굴을 세게 스쳤다. ‘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몸이 휙휙 기울어지고, 눈앞의 트랙이 끝없이 이어졌다.
산 중턱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마치 영화 한 장면 같았다.
그 순간, 아무 생각이 안 났다. 그냥 바람, 속도, 그리고 내 웃음소리뿐.
트랙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진짜 오랜만에 순수하게 ‘즐긴다’는 감정이 들었다.
그게 그렇게 반가웠다.
이따가다
루지를 타고난 뒤엔, 조용히 쉴 수 있는 숙소를 찾아 이따가다 풀빌라로 향했다.
이름부터 마음에 들었다. “이따가다” — 느긋하게 쉬라는 뜻 같았다.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풍경이 참 예뻤다.
통유리 너머로 해가 천천히 지고 있었고, 수영장은 노을빛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였다.
가방을 던져두고, 수영장으로 풍덩 들어갔다.
살짝 차가운 물이 몸을 감싸며 하루의 피로를 쓸어갔다.
물 위에 누워 하늘을 보니, 구름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없고, 그저 물소리만 들리던 그 시간. ‘이런 게 진짜 쉼이지’ 싶었다.
밤이 완전히 내려앉을 때쯤, 마당 한편에서 불멍 타임을 가졌다.
오로라가루를 뿌렸더니.. 불꽃이 정말 예쁘게 빛이 났다.
밤하늘에는 정말 별이 많았다. 도시에서는 본 적 없는 하늘이었다.
하나하나 세어보다가, 그냥 멍하니 바라봤다.
‘이런 밤은 꼭 기억해야겠다.’ 괜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풍각한우한돈 식육식당
다음날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 커튼을 열자 햇살이 따뜻했다.
청도의 공기는 유난히 부드러웠다.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풍각한우한돈 식육식당에 들렀다.
겉보기엔 평범한 시골식 정육식당 같았는데, 문을 여는 순간 고소한 냄새가 확 퍼졌다.
불판 위에 고기가 올라가자 ‘치익—’ 소리가 나면서 순간적으로 군침이 돌았다.
사장님이 직접 썰어주신 한우 등심은 빛깔부터 달랐다.
쌈장에 찍어 한 점 먹는 순간, 고소하면서도 부드럽게 녹아내렸다.
“와…” 나도 모르게 감탄이 나왔다.
된장찌개는 진하게 끓여서 그런지 국물에 깊은 맛이 있었다.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창밖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 그리고 고기 굽는 냄새까지.
그 모든 게 어쩐지 마음을 편하게 해 줬다.
이런 평범한 식사에도 행복이 숨어 있구나 싶었다.
돌아오는 길
식당을 나와 차에 오르니 창문 밖으로 들판이 또 보였다.
햇살은 여전히 따뜻했고, 바람은 부드러웠다.
어제보다 조금 더 가벼워진 마음이었다.
군루지파크의 짜릿한 바람, 풀빌라의 노을빛, 그리고 식당의 따뜻한 밥냄새까지...
그게 다 모여 하나의 기억이 되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사는 건 결국 이런 순간들 덕분이 아닐까.’
별일 아닌 하루가, 누군가에겐 인생의 쉼표가 되기도 하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엔 여전히 루지 타던 그때의 바람 냄새가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다음에도, 그냥 이렇게 떠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