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에 도착하던 아침, 공기가 유난히 묘했다.
차창을 열자 바람이 스르르 얼굴을 스쳤다.
햇살이 따뜻했는데, 그 안에 바다가 섞여 있었다. 괜히 그 냄새가 그리웠다.
그리움이라는 게, 사실 이유 없이 오는 거잖나.
이번 여행은 계획적이지 않았다. 그냥 일상에서 조금 도망치고 싶었다.
너무 바쁘게, 너무 열심히 살고 있는 스스로가 갑자기 어색했다.
그래서 핸드폰 지도에 손가락을 대고, ‘창원’이라는 글자를 찍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로봇랜드
로봇랜드에 도착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생각보다 크다’였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음악, 사람들 웃음소리, 회전하는 관람차.
그 모든 게 낯설지 않게 반가웠다. 이상하게 이런 유원지 냄새를 맡으면, 내 안의 어린 내가 깨어나는 느낌이다.
입구 근처에 있던 거대한 로봇을 올려다보며
괜히 “와, 진짜 멋있다”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옆을 보니 한 꼬마아이가 로봇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나도 어릴 때는 저랬을까?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믿던 시절.
전시장 안에서 인공지능 로봇이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그 말에 웃으면서도, 조금 이상했다.
누군가 나를 반긴다는 건 분명 따뜻한 일인데, 그게 사람의 온기가 아닐 때는 어딘가 공허했다.
그래서 잠시 멈춰 서서 로봇의 눈을 봤다.
차가운 유리 아래 반짝이는 LED 불빛 속에, 묘하게 사람의 마음이 비쳐 보였다.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사이, 나는 한참을 걸었다.
기계음과 웃음소리가 섞인 공간 속에서 문득 내 안의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이런 단순한 소음이 오히려 사람을 살린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해양드라마세트장
두 번째로 향한 곳은 해양드라마세트장이었다.
로봇랜드의 반짝임이 도시의 ‘미래’라면, 이곳은 ‘과거의 한 장면’ 같았다.
낡은 나무문, 오래된 골목, 먼지 낀 간판들.
그 모든 것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정지되어 있었다.
해질 무렵의 세트장은 이상하게 고요했다.
사람이 거의 없어서 바람 부는 소리, 파도 밀려오는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렸다.
나는 천천히 골목 사이를 걸었다. 벽에 비친 내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여기가 드라마 촬영지였다고?” 누군가 지나가며 그렇게 말하는 걸 들었다.
그 말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이곳은 실제보다는 기억 같은 공간이었다.
지금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누군가가 웃고 울고 있을 것 같은 느낌.
바닷바람이 살짝 차가워졌다. 세트장 끝자락에는 낡은 배 한 척이 정박해 있었다.
페인트가 벗겨진 선체를 손끝으로 살짝 문질러보았다.
거칠고 따뜻했다. ‘이 배는 얼마나 많은 장면을 통과했을까.’
그렇게 생각하니, 영화보다 내 삶이 더 스쳐갔다.
나 역시 매 순간 다른 장면 속을 지나고 있겠지.
해가 서서히 지고 있었다. 세트장 위로 붉은빛이 번졌다.
그 빛 속에서 모든 게 현실 같기도, 꿈같기도 했다.
나는 그 풍경을 오래 바라봤다.
그건 단순히 ‘관광지’의 풍경이 아니라, 마음속 어떤 장면으로 오래 남을 것 같았다.
오션크림슨
해가 거의 질 무렵, 마지막으로 오션크림슨 카페에 들렀다.
이름부터 예뻤다. ‘오션크림슨’... 바다와 붉은 노을의 조합이라니, 이미 그 말만으로도 낭만이 가득했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진 커피 향. 그리고 한눈에 들어오는 바다.
창문이 아주 크게 나 있어서, 마치 카페가 바다 위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아 아이스라테를 주문했다.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가 시원했다. 그 소리와 함께 바다의 파도 소리가 겹쳐 들렸다.
밖을 바라보니, 노을빛이 물결 위에 번지고 있었다.
그 장면이 너무 예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냥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손등에 닿는 햇살을 느꼈다.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내 안의 모든 것이 잠시 멈췄다.
이곳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었다.
누군가는 여기서 하루를 기록하고, 누군가는 이곳에서 마음을 식히고 간다.
나도 오늘, 내 마음 한 조각을 두고 가고 싶었다.
노을이 완전히 져갈 때쯤, 창문에 내 얼굴이 비쳤다.
조금 피곤해 보이긴 했지만, 그 안에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온함이 있었다.
아무리 짧은 여행이라도, 그 안에 ‘쉼’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그날은 정말 그렇게 느꼈다.
돌아오는 길
차를 타고 나오는 길, 하늘은 완전히 붉게 물들어 있었다.
뒤돌아보니 바다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갈매기들이 천천히 날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옛 노래가 유리창 사이로 바람에 섞여 흘렀다.
나는 창문을 조금 열었다. 바람이 얼굴을 스치자 눈물이 살짝 고였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마음이 꽉 차올랐다.
로봇랜드의 웃음, 세트장의 정적, 오션크림슨의 바람.
그 모든 장면이 한 편의 영화처럼 이어졌다.
아마 이 여행은 사진보다, 글보다, 그냥 내 안에 남는 ‘감각’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언젠가 다시 창원을 떠올리면... 그때의 바람 냄새가 먼저 떠오르겠지.
바람 속에 섞인 커피 향, 노을빛이 비추던 바다,
그리고 그 바다를 바라보던 나 자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