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으로 가는 길, 차창 밖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산이 유난히 부드럽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어디선가 가을이 슬쩍 걸어 나온 모양이다.
길가 감나무에는 주황빛 사과와 감이 매달려 있었고, 바람에는 살짝 차가운 공기가 섞여 있었다.
그 공기 속에는 솔향이 묻어 있었고, 길게 달려온 나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했다.
사과축제
첫 번째 목적지는 너무 맛있어서, 사과해야 할 정도로 달콤한 청송사과축제였다.
가을 하늘 아래 붉게 물든 사과나무 사이로, 달콤한 사과향기가 밀려왔다.
햇살을 받은 사과들이 반짝거리면서 눈부셨다. 아이들은 손바닥만 한 사과를 들고 시식존에서 까르르 거리며 웃고 있었다.
그 웃음소리가 아직도 생생하게 들린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누군가 나를 불러 “한입 먹어보라”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직접 사과를 따보기로 했다. 손끝에 닿는 사과는 생각보다 무겁고 차가웠다.
나무에서 막 따온 사과를 베어 물자, 달콤함과 상큼함이 입안을 채웠다.
숨결 속으로 스며드는 가을 냄새, 손끝에 남은 잎의 질감, 햇살에 데워진 과즙.
잠깐이지만,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기분이었다. 어린 시절 시골 외할머니 댁에서 몰래 과일을 따먹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의 설렘이 다시 마음속에서 살짝 웃고 있었다.
축제장을 걷는 동안, 사람들의 표정과 걸음이 모두 따뜻하게 느껴졌다.
장터에서 파는 사과 잼과 주스, 아이스크림까지, 작은 것 하나하나가 여행의 맛이 됐다.
길가 노점에서 스며드는 달콤한 향과 바람, 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트로트 음악이 섞이면서, 한 장의 그림처럼 풍경이 내 마음속에 자리했다.
주왕산 대전사
사과축제를 뒤로하고 주왕산 대전사로 향했다. 산길에 접어드는 순간, 차 안 공기가 달라졌다.
숲에서 스며 나오는 흙냄새와 단풍잎의 은은한 향, 그리고 계곡 물소리. 마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절 입구에 들어서자 나무 기둥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고, 낙엽이 사뿐히 쌓인 마당이 발걸음을 부드럽게 막았다.
대전사 안에서는 목탁 소리와 향이 은은하게 섞여 있었다.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숨을 고르고, 마음을 비웠다.
한 발 한 발걸음을 내디디며, 나무와 바람, 그리고 내 발자국 소리가 어우러지는 느낌을 느꼈다.
잠깐 눈을 감으니, 온 세상이 숨 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세상에서 쓸데없는 생각과 근심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대전사 뒤편 작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자, 맑은 물이 돌 사이를 스르르 흘렀다.
햇살이 반짝이는 물결, 살랑이는 바람, 주변의 새소리. 이 모든 것이 서로 이야기하는 듯, 자연이 나를 맞이하는 듯했다.
잠시 앉아 계곡의 흐름을 바라보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편안함이 올라왔다.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이 스며들었다.
바우카페
산을 내려와 들른 바우카페는 이름처럼 바위 바로 앞에 자리했다. 창밖으로 펼쳐진 주왕산 능선, 그리고 거대한 바위가 그대로 마주했다.
카페 안은 따뜻한 커피 향으로 가득했고, 창가 자리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잔잔한 음악과 바람소리, 커피 잔을 잡은 손끝의 온기가 합쳐지니, 마음 한편이 따뜻하게 녹았다.
카페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림 같았다. 산등성이에 내려앉는 노을빛, 바위 위로 비치는 붉은 기운,
그리고 그 모든 빛과 그림자를 그대로 담은 하늘.
나 혼자 앉아 오늘 하루를 되짚었다. 사과향 가득한 축제, 대전사의 고요함, 계곡 물소리, 바우카페 창가의 잔잔함.
서로 다른 결의 하루가 하나로 이어져 마음속에 반짝였다.
시간이 흘러 해가 지고, 산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카페 안은 서서히 어둑해졌고, 밖으로 보이는 노을빛이 손끝 위로 살짝 스며왔다.
그 따뜻함에 마음이 묵직하게 채워졌다. 돌아가는 길이 아쉬웠지만, ‘오늘 하루, 참 좋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돌아오는 길
청송은 화려하지 않지만, 마음 한편을 채워주는 힘이 있다.
사과 한입의 달콤함, 대전사의 고요함, 계곡의 맑은 물, 바우카페 창가의 잔잔한 시간.
모든 것이 순식간에 스쳐갈 수도 있지만, 마음속 깊이 오래도록 머무른다.
돌아오는 차 안, 붉게 물든 사과밭이 스쳐 지나갈 때...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청송에 와서, 나는 참 잘했다.'
그 마음 하나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