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국내 제주도 여행기 1편: 단소, 브릭캠퍼스 레고박물관, 미스틱 3도

by 크리m포켓 2025. 10. 20.
반응형

제주로 가는 비행기 안, 창가에 앉아 있었다.
구름이 유난히 낮게 깔려 있었고, 그 위로 햇살이 부서지며 흩어졌다.
그 장면을 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도 저 구름처럼 조금은 흩어져도 괜찮겠지.’

비행기가 착륙하고, 문이 열리자마자 달라진 공기의 냄새가 들어왔다.
제주도의 공기에는 늘 바다가 섞여 있다. 짠내 같지만 어쩐지 달콤한, 그 특유의 냄새.
콧속 깊이 들이마시자 몸이 천천히 풀렸다.
도시에서 꽉 막혀 있던 어떤 결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정갈한 집밥 같았던 단소 상차림

단소

이름부터 마음이 내려앉는 소리 같다.
돌담길을 따라가다 보면 작은 나무 간판이 보이고, 그 안에는 고즈넉한 마당이 있다.
문을 열자,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된장, 조림 생선, 그리고 밥 짓는 냄새.
그 냄새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식탁 위에는 반짝거리는 반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특별할 건 없는데, 하나같이 정성이 느껴졌다.
달지 않은 나물, 살짝 간간한 멸치볶음, 감칠맛 나는 흑돼지 제육볶음.
한 숟갈 떠먹자마자, 입 안에 ‘집’이라는 단어가 퍼졌다.
이건 그냥 밥이 아니라, 마음을 달래주는 밥이었다.

창문 밖으로는 제주 특유의 돌담과 국화꽃이 보였다.
국화가 살짝 흔들리는 걸 보고 있자니 괜히 마음이 뭉클했다. ‘이런 평범한 풍경이 왜 이렇게 좋을까.’
밥을 먹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음식 하나하나가 나를 조용히 안아주는 기분이었다.

브릭캠퍼스 레고박물관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와 브릭캠퍼스로 향했다.
입구부터 알록달록한 색감이 눈을 사로잡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 사이에서 어른들도 함께 웃고 있었다.
이상하게, 이곳에 들어서자 나도 어린아이가 된 것 같았다.

커다란 전시관 안에는 작은 세상이 가득했다.
한라산을 형상화한 레고, 돌하르방, 해녀, 그리고 제주 바다.
블록 하나하나가 모여 완성된 세상을 보며 생각했다.  “아, 인생도 이렇게 쌓이는 거구나.”
당장 완성되지 않아도, 천천히 붙이고, 맞추고, 부딪히면서 결국 형태를 만들어 가는 것.
어쩌면 레고를 만드는 일은 인생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한쪽 구석에서 아이가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이건 언제 다 완성돼?”
아빠는 웃으며 대답했다. “천천히 하면 다 돼. 급할 필요 없어.”
그 대화를 듣는 순간 이상하게 목이 따끔했다.
‘급할 필요 없다’는 그 말이 요즘의 나에게 너무 필요한 말이었으니까.

벽면에는 레고로 만든 영화 캐릭터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이들이 사진을 찍으며 환호했고,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꺼내 한 장 찍었다.
사진 속 나는 웃고 있었고, 오랜만에 그런 웃음이었다.
레고가 아니라, 그 안의 순수함이 내 마음을 건드린 것 같다.

미스틱 3도

오후 햇살이 살짝 기울 무렵,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미스틱 3도였다.
이름부터 신비롭고, 어쩐지 낭만적인 느낌이 든다.

입구부터 향긋한 허브 향이 퍼졌다. 발아래는 돌길, 양옆에는 라벤더와 수국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 길을 걷는 동안 마음이 조용해졌다.

카페 안은 유리창이 크게 나 있어 정원이 한눈에 들어왔다.
햇살이 잔잔히 떨어지고, 커다란 나무 그림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해 자리에 앉았다. 잔에서 피어오르는 향이 따뜻했다.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그 부드러움에 괜히 울컥했다.
바람, 햇살, 커피 향, 그리고 나. 그 네 가지가 만들어낸 순간의 조화가 너무 완벽했다.

바깥 정원에서는 아이들이 뛰어놀고, 연인이 손을 잡고 걷고 있었다.
그 모든 장면이 한 편의 영화 같았다.

시간이 아주 천천히 흘러가는 곳... 누군가가 내 옆에 앉아 “지금 이 순간이 전부야”라고 말해줄 것만 같았다.
그 말이 필요 없을 만큼, 내 안에서는 이미 평화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잔을 비우고, 천천히 정원을 걸었다. 꽃잎 사이로 빛이 스며들고, 멀리서 새소리가 들렸다.
발끝으로 스치는 풀잎의 감촉까지도 선명했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다정했다.
세상이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다시 느꼈다.

돌아오는 길

차에 올라 숙소로 향하는 길, 창밖으로 노을이 보였다.
하늘은 분홍빛으로 타올랐고, 바다는 그 빛을 고요히 품고 있었다.
라디오에서는 느린 재즈가 흘러나왔고, 바람이 살짝 차가웠다.
그 바람 속에 오늘 하루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단소의 밥냄새, 브릭캠퍼스의 웃음소리, 미스틱 3도의 커피 향. 그 모든 게 내 안에서 조용히 뒤섞였다.

오늘 하루, 나는 오랜만에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여행.  그게 바로 제주였다.

 

숙소에 도착해 커튼을 젖히니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불을 끄고 누워 눈을 감았다. 바람 소리, 파도 소리, 그리고 내 심장 소리.
그 셋이 섞여, 잔잔한 노래처럼 들렸다.

‘오늘, 참 좋았다.’
그 말 하나만 마음에 남긴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