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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주도 여행기 2편: 동문시장, 달책방, 명리동식당

by 크리m포켓 2025.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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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의 둘째 날은 이상하게도 더 천천히 흘렀다.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비스듬히 들어와 내 얼굴에 닿는 순간, 눈을 감은 채로 생각했다.
밖으로 나서자 공기는 어제보다 더 따뜻한 느낌이었다. 하늘은 또 끝없이 맑고 푸르렀다.

 

제주의 날씨는 참 이상하고 묘하다...
햇살이 강한데도 바람이 살짝 차가워, 그 두 가지가 부딪히며 이상한 평온함을 만든다.
그 공기 속을 가르며 향한 곳은 동문시장이었다.

구좌읍 당근으로 만든 당근쥬스와 당근케이크

동문시장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사람들의 정겨운 목소리, 고소한 오메기 떡 냄새, 생선의 비린 한 내음,

그리고 귤껍질의 달콤함이 공기 속에 어우러져 있었다.

나는 천천히 걸었다. 시장 골목을 돌다 보면, 그냥 먹어야 할 것 같은 순간이 온다.
눈앞의 꼬마 전, 갓 튀긴 고등어튀김, 쫀득한 오메기떡.
그중에서도 나는 노릇하게 구워진 전을 집어 들었다.
한 입 베어무는 순간, 바삭한 소리와 함께 고소한 향이 퍼졌다. 기름 냄새마저 따뜻하게 느껴졌다.
시장에서는 그런 게 있다. 평소엔 시끄럽다고 느낄 소리마저, 여긴 리듬이 된다.

어느 노점 앞에서 귤을 사던 아주머니가 내게 말을 걸었다.
“혼자 왔수꽈?”,  “예, 그냥 쉬러 왔어요.”
그 말에 아주머니가 빙긋 웃으며 귤 하나를 내밀었다.
귤즙이 손끝으로 흘러내렸는데, 그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시장 끝에선 어묵국이 팔리고 있었다. 스티로폼 컵에 담긴 어묵국을 들고 잠시 벤치에 앉았다.
국물 한 모금, 어묵 한 입. 아무 맛도 아닌 것 같은데, 왠지 눈물이 났다.
누군가 옆에 앉아 “오늘도 수고했어요”라고 말해주는 느낌이었다.
사람 냄새가, 따뜻한 국물에 다 녹아 있었다.

달책방

동문시장을 나와 차를 몰았다. 차창 밖으로 바다가 따라왔다.
햇살이 유리창 위로 반짝였고, 바람은 얼굴을 스쳤다.

하얀 벽 위에 손글씨로 ‘달책방’. 마당엔 고양이 한 마리가 누워 있었고, 고개를 들어 나를 힐끗 보더니 다시 잠들었다.
그 평화로운 모습이 괜히 부러웠다.

문을 열자, 벨이 딸랑 울렸다. 안에는 잔잔한 음악과 커피 향이 섞여 있었다.
사람이 많지 않아 좋았다. 벽 한쪽엔 오래된 책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창가엔 작은 화분이 놓여 있었다.
햇살이 그 위로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당근주스와 케이크를 시켰다. 주황빛 주스가 보틀에 담겨 나왔다.
빛에 비치니 반짝였다. 한 모금 마시자 진짜 당근 맛이 났다.
달지 않고, 조금은 쌉쌀하고, 땅의 냄새가 났다.
입안 가득 그 맛이 번지는데, 묘하게 편안했다.

케이크는 크림이 살짝 녹아 있었다. 포크로 떠서 먹자 달콤함이 천천히 스며들었다. 그 달콤함이 위로 같았다.
요즘은 누가 나한테 따뜻한 걸 해주는 날이 잘 없어서, 그저 이런 조용한 케이크 한 조각이 너무 고마웠다.

창밖에는 햇살이 조금씩 기울고 있었다.
감귤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그 사이로 고양이가 느릿하게 걸어갔다.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아, 인생도 이렇게 느리면 좋겠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오후. 그게 이 여행의 선물이었다.

명리동식당

저녁이 되자 갑자기 배가 고파왔다.
아무 데서나 먹을 수는 없었다. 이왕이면 현지인들이 자주 가는 식당이 좋았다.
검색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던 택시 기사님께 물었다.
“기사님, 어디가 진짜 맛있어요?”
그분이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며 말했다. “명리동식당이요. 거긴 진짜 제주 현지인들 가는 데예요.”

그 말 하나에 곧장 향했다. 정말 관광객보다는 현지인 손님이 많은 곳이라 더욱 믿음이 갔다.
시끌벅적한 대화 소리, 연기, 그리고 구워지는 고기의 소리.
그 소리들이 묘하게 정겹게 들리고 고기까지 맛있을 것 같았다.

자리에 앉자 흑돼지 목살이 지글지글 구워지기 시작했다.
기름이 튀는 소리에 마음이 괜히 설렜다.
첫 점을 집어 들고, 제주 멜젓에 살짝 찍어 입에 넣었다. 그 순간, ‘아…’ 하고 한숨이 새어 나왔다.
씹을수록 고소하고, 입 안 가득 퍼지는 육즙이 달았다.
멜젓도 직접 만든다고 하셨는데... 역시 흑돼지랑 궁합이 너무 좋았다.

정말이지 고기질이 너무 좋았고, 먹다 보니 정말 맛있어서 특수부위도 추가해서 먹었다.
마무리는 뚝배기 김치전골이었다. 보글보글 거리는 전골은 고기가 듬뿍 들어가서 모든 게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였다.

돌아오는 길

식당을 나서 숙소로 돌아가는 길, 차창에 빗방울이 부딪혔다.
오늘 하루의 장면들이 천천히 스쳐갔다.

제주는 그런 곳이다.
특별하지 않은 작은 순간들이 이상하게 마음을 툭 건드린다.
그 평범함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만난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보통의 하루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오래 남을 하루가 되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

제주도의 둘째 날은 그렇게 흘러갔다.

조용히, 그러나 깊게... 그날의 공기와 빛이 아직도 내 마음 어딘가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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