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마음 한쪽이 먼저 설레기 시작한다. 도시의 활기와 바다의 자유로운 기운이 동시에 느껴지는 곳. 이번 여행은 단순히 어딘가로 떠난 게 아니라, 내 안에 꽉 막혀 있던 무언가를 풀어주고 싶어서 찾아간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목차
- 해운대블루라인파크
- 우봉 샤브
- 브로니
- 오늘을 기억하며
해운대블루라인파크
스카이캡슐 앞에 섰을 때, 괜히 웃음이 났다. 형형색색의 작은 열차들이 마치 동화 속 장난감 같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 앉자마자, 눈앞에는 바로 바다가 펼쳐졌다.
열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바다를 보는 건 늘 좋지만, 이렇게 바다와 나 사이에 아무 장벽도 없는 듯한 기분은 처음이었다. 파도 소리가 귓가를 때리고, 햇빛이 반짝이는 물결이 눈을 채우자, 그냥 아무 생각도 하기 싫어졌다.
창문에 손을 대고 바라보는데, 순간 나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이런 게 여행이지.’ 누구와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사진을 찍지 않아도, 그저 이 풍경 하나로 충분했다. 바닷새가 하늘을 가르며 날아가는 모습조차도, 그 순간은 나를 위로하는 듯했다.
열차는 서두르지 않았다. 마치 내 마음을 아는 것처럼 천천히 달렸다. 그 느림 덕분에 놓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었다. 바다, 빛, 바람, 그리고 그 순간의 나.
우봉 샤브
부산이면 다들 싱싱한 회나 해산물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샤부샤부를 먹겠다고 했을 때 친구도 살짝 가웃 했었다.
꼭 해산물 요리가 아닌 다른 메뉴도 먹고 싶었다. 여기는 요즘 샤부샤부 스타일의 무한리필 집이 아닌, 퀄리티 좋은 고기를 맛볼 수 있다. 끓는 국물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 그 안에 야채를 넣는 순간, 국물이 더 깊은 향을 뿜어냈다.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넣고 몇 초 기다린 뒤 건져내 입에 넣자, 그 부드러움에 눈이 절로 감겼다. 역시나 고기가 정말 신선하고 맛있었다. 먹어본 샤부샤부 고기 중에 제일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단순히 맛있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따뜻하고, 포근하고, 어쩐지 마음속 허기까지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한 숟가락 국물을 떠먹는 순간, 오늘 하루가 국물 속에 녹아든 것 같았다. 바닷바람으로 서늘했던 몸이 스르르 풀리고, 속이 차분하게 데워졌다.
친구가 매콤한 소스를 듬뿍 찍어 먹으며 "야, 이거 진짜 살면서 먹은 샤브 중 최고다"라고 했을 때,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그 시간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하루의 피로를 녹여내고 여행의 여운을 더 짙게 만드는 의식 같았다.
브로니
배를 든든히 채우고 향한 곳은 브로니 카페였다. 솔직히 말하면, 여행에서 카페에 들어가는 순간이 제일 좋아진다. 밖에서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들을 차분히 정리하는 공간 같아서.
카페 문을 열자 은은한 커피 향이 먼저 나를 감쌌다. 큰 창가에 앉아 우리는 시그니처 라테를 시켰다. 커피가 나오기 전, 창밖을 바라보는데 노을빛이 바다에 번지고 있었다. 바다는 점점 푸른빛에서 보랏빛으로, 다시 붉은빛으로 변해갔다. 그 변화가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괜히 가슴이 벅차올랐다.
라테를 마시는 순간, 달콤 쌉싸름한 맛이 입안에 감돌면서 왜 시그니처 메뉴인지 알 것 같았다. 많은 얘기를 하지 않아도 창 밖의 잔잔한 바다 모습만 보아도 충분히 힐링이 되는 느낌이었다. 그 시간이, 여행의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
노을이 완전히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말없이, 하지만 누구보다 많은 이야기를 마음속에서 나누고 있었다.
오늘을 기억하며
오며 가며 부산에서 외국인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블루라인파크에서는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인증숏을 찍으려고 너도나도 기찻길에 서서 멋진 포즈로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외국인들이 더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가 맞는구나! 다시 한번 부산의 인기에 놀랐다. 그리고 나도 인생샷을 건지기 위해 동참하고 있었다. 행복했던 한 순간이었다.
이런 모습 하나하나 내 마음속, 내 머릿속에 새겨졌다. 여행이란 결국 이런 것 같다. 특별할 것 없는 하루조차도, 바다와 국물과 커피 한 잔이 만나면 인생의 한 장면으로 남는다. 오늘 부산에서의 하루는 내 안에 조용히 파문처럼 번졌다. 아마 시간이 흘러도, 문득문득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는 그런 하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