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랑 산이랑 둘 중에 고르라면 바다가 더 좋다. 바다는 이상하게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뚫리고 기분이 좋아진다. 마음도 편안해진다. 바다는 또 보고 또 보아도 질리는 맛이 없다, 그래서 부산을 찾고 또 찾아도 좋은 이유가 있다. 어제의 바다랑 오늘의 바다가 틀리고, 해운대랑 광안리 바다가 주는 바다의 느낌.. 인상도 참 다르다.
목차
- 해월전망대
- 로우앤스윗
- 참새방앗간
- 부산의 밤, 마음의 온도
해월전망대
전망대에 올랐을 때, 바람이 세게 불었다. 머리카락이 얼굴에 자꾸 달라붙었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보다 더 신기한 건, 그 순간엔 이상하게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거였다. 마음속이 텅 비어버린 듯한 기분.
멀리 바다 위로 하얀 포말이 부서지고, 햇살은 유리처럼 바다 위를 반짝였다. 누군가 옆에서 사진을 찍는 소리, 아이가 웃는 소리, 바람이 스치는 소리. 모두가 섞여서 묘하게 따뜻했다.
나는 그냥 가만히 서서, 그 바람 속에 내 마음을 풀어놨다. 요즘 너무 단단하게 조여 있었던 마음이 바다 냄새와 함께 천천히 녹아내리는 느낌. 그 순간이 좋았다. 누가 묻지 않아도,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오로지 나와 바다만 존재하던 그 짧은 순간. 그게 다였다.
로우앤스윗
바람을 잔뜩 맞고 나니, 따뜻한 무언가가 간절했다. 그래서 골목을 따라 걷다가, 아무 생각 없이 문 하나를 열었다. ‘로우앤스윗’.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낮고, 달콤하다니.. 꼭 나에게 해주는 말 같아서 좋았다.
카페 안의 공간은 작지만 따뜻한 느낌이었다. 잔잔한 음악 소리, 달콤했던 커피 향, 그리고 부드러운 빛의 느낌. 테이블에 앉는 순간 시간이 잠시 멈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창밖으로는 이미 해가 지고 있어서 느을 빛이 번져가는 핑크빛이 보였다. 우리가 시킨 라테가 나왔다.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따뜻함이 입 안을 감쌌다. 생각지도 못하게 라테가 너무 맛있어서 놀랐다. 지금까지 먹어 본 라테 중 손꼽히는 맛이었다. 고소하면서 살짝 달콤 쌉싸름한 맛이 정말 잊을 수 없다. 같이 시켰던 디저트 에그타르트와 까눌레도 커피랑 참 잘 어울렸다. 에그타르트의 페이스트리가 한 겹 한 겹 아주 바삭했다.
카페 공간만 넓었다면 라테를 또 시켜서 하루 종일 여기에만 있고 싶었다. 커피에 진심이 내가
정말로 반한 카페이다. 친구들에게도 소개해 주고 싶은 공간이었다..
참새방앗간
저녁은 바다 앞에서 먹고 싶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들어간 곳, 간판에는 ‘참새방앗간’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이름이 귀여워서, 그냥 들어갔다. 안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지글지글 끓는 냄비 소리, 냄비에 수북이 쌓인 조개구이 모습,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들.
다행히 창가 자리가 비어 있어서 얼른 자리를 잡았다. 창밖으로는 해운대 밤바다가 보였다. 밤바다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불빛이 물 위에서 반짝이는 모습은 너무 황홀했다.
조개들이 가득한 수북한 가리비찜이 나왔다. 안에는 가리비랑 어묵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끓이면 끓일수록 매운 향기가 올라왔다. 가리비를 집어서 한입 먹는 순간, 뜨겁고 달큰 짭조름한 맛이 입 안에 퍼졌다. ‘아, 이게 바로 부산의 맛이구나.’ 촉촉하고 부드러운 조개찜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 해운대 앞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조개찜은 유난히 더 맛있고, 따뜻했다. 맥주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오늘 하루가 천천히 풀리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말했었다. 좋은 여행은 장소보다 ‘순간’에 있다고.. 그 말이 딱 이 순간 같았다.
부산의 밤, 마음의 온도
식당을 나와 바다 쪽으로 걸었다. 밤공기가 살짝 차가웠다. 그런데 그 차가움이 기분을 더욱 좋게 만들었다. 오히려 나를 깨우는 듯했다. 해운대바닷가의 불빛이 멀리서 빛나고 있었다. 파도는 일정한 리듬으로 밀려왔다. 그 앞에서 나는 잠시 멈췄다.
오늘 하루가 영화 같았다. 큰 사건도 없고, 거창한 일정도 없었지만 마음 한편이 따뜻하게 채워진 기분. ‘이런 게 여행이지.’ 누군가 옆에서 속삭인다면,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을 거다. 바다 냄새를 마지막으로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다시 힘들어지면, 또 와야지. 이 바람과 냄새, 이 불빛을 기억해야겠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핸드폰 배터리는 거의 없었고, 바다는 여전히 반짝였다. 그냥 그걸 바라보며 생각했다.
“오늘은, 참 괜찮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