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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수 여행기 1편: 향일암, 갈치조림 기똥차게 맛있는 집, 진남맨숀

by 크리m포켓 2025.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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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창문을 열자, 짠내가 섞인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그래, 이게 바다 냄새구나.’ 오랜만에 맡는 바다의 냄새는 이상하게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 짠 공기 속에는 설렘도 있었고, 조금은 낯선 고요함도 섞여 있었다.

여수로 내려올 땐 단지 쉬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누구를 만나러 오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바다를 보며 멍 때리고 싶었다. 그게 전부였다.

 

차창 밖으로 푸른 물결이 스치고, 멀리 바다 위로 흰 갈매기들이 떠 있었다.
햇살은 바다에 부서져 반짝였고, 그 반짝임이 내 마음 깊숙이 번져 들어왔다.
여수는 그렇게 내 하루 안으로 들어왔다.

향일암에서 바라본 그림 같았던 여수 바다 모습

향일암

여수의 동쪽 끝, 돌산 공룡능선 너머 바다를 품은 절 향일암.
길은 생각보다 가팔랐지만, 걸음마다 바다의 숨결이 함께했다.
돌계단을 오를수록 파도소리가 멀어졌다가 다시 가까워졌다.
이곳은 마치 하늘과 바다 사이에 걸린 절 같았다.

입구의 작은 범종소리가 바람을 타고 흘렀다.
절벽 아래로는 짙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햇살이 수면 위에서 부서져 금빛으로 반짝였다.
그 빛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름 그대로였다. 해를 맞이하는 절.

 

돌계단 사이사이에서 스님들의 목탁 소리, 관광객의 낮은 숨소리가 섞였다.
누군가는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고, 누군가는 사진 대신 잠시 눈을 감았다.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평온해졌다.

바다를 향해 나 있는 전망대에 섰다. 멀리 갈매기가 선회했고,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쳤다.
햇살이 세차게 부서지며 바다를 감쌌다. 그 순간,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저 이 모든 풍경이 ‘살아 있음’ 그 자체였다.

돌아오는 길, 계단 아래 노점에서 따뜻한 커피를 샀다.
스티로폼 컵을 손에 쥐니 온기가 전해졌다. 바다를 바라보며 한 모금 마셨다.
짭조름한 바람과 달콤한 커피가 묘하게 어울렸다. 그 조화가 참 좋았다.

갈치조림 기똥차게 맛있는 집

배가 출출해질 즈음, 현지 택시 기사님이 알려준 갈치조림 맛집으로 향했다.
“여긴 진짜 현지인들이 줄 서서 먹어요.” 그 한마디에 믿음이 갔다.

가게 앞에는 이미 사람들이 서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냄비. 그 안에서 빨갛게 조려지는 갈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코끝이 찡했다. 그 냄새엔 ‘집밥’의 온기가 있었다.

자리 잡고 앉자 사장님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냄비를 가져다주셨다.
뚜껑을 여는 순간, 빨갛게 끓는 양념이 ‘보글보글’ 소리를 냈다.
김이 확 퍼지며 얼굴을 덮었다. 그 향만으로도 밥 한 그릇은 뚝딱일 것 같았다.

갈치 한 점을 젓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살이 부서지듯 부드러웠고, 양념이 골고루 배어 있었다.
한 입 넣자, 입안 가득 짠맛, 매운맛, 그리고 단맛이 동시에 퍼졌다.
그 맛이 마치 여수의 바다 같았다. 짠데, 이상하게 따뜻했다.

함께 나온 무도 숨이 잘 들었다. 양념이 깊이 배어 촉촉했고, 밥 위에 얹어 먹으니 그야말로 완벽했다.
입안이 화끈했지만, 이상하게 그 매운맛이 위로 같았다.
땀이 살짝 났는데, 그마저도 좋았다.

옆자리 아저씨가 “여긴 진짜 맛있지요?” 하며 웃었다.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음식이 이미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식당을 나서며, 문 앞에 걸린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기똥차게 맛있는 집.’ 정말, 거짓말이 아니었다.

진남맨숀

해가 기울 즈음, 숙소인 진남맨숀으로 향했다. 이름부터 뭔가 정이 갔다.
도착하자마자 문을 열었는데, 그 안에서 따뜻한 나무 향이 훅 들어왔다.

바닥은 온기가 남아 있었고, 벽에는 오래된 액자가 걸려 있었다.
창문 틈새로는 바람 소리가 스며들었다. 그 소리가 마치 오래된 노래처럼 들렸다.

 

한옥의 감성이란 건 참 묘하고 신기하다.
화려하진 것 같으면서도 아닌 듯...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다.
바닥에 앉아 창문 너머로 바다가 보일까... 하며 밖을 내다봤다.
멀리서 불빛이 반짝였다. 그 불빛이 마치 누군가의 안부처럼 느껴졌다.

 

밤이 깊어질수록 조용해졌다. 파도 소리, 바람, 그리고 간헐적으로 들리는 종이문 소리.
그 사이사이에서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불을 끄고 누워 천장을 바라봤다.

낮의 햇살이, 갈치조림의 향이, 향일암의 바람이 하나씩 머릿속을 스쳤다.

그 모든 장면들이 포근했다.
마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불완전하지만 그래서 더 진짜 같았다.

돌아오는 밤

창밖은 여전히 고요했다.
바람이 살짝 불고, 멀리서 배의 경적 소리가 들렸다.
잠들기 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평범한 하루가, 왜 이렇게 소중할까.’

여수의 밤은 특별한 이벤트도 없고, 사진으로 남길 풍경도 아니었지만, 묘하게 마음을 건드렸다.
삶이란 게 결국 이런 조각들로 채워지는 게 아닐까.

그렇게 나는, 조용히 여수의 공기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세상 모든 소음이 멀어지고, 내 안의 목소리만 또렷하게 들리던 밤.

여수는 나에게 여행지라기보다, ‘쉼의 장소’였다.
누군가에게는 흔한 바다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오래 묵은 마음의 먼지를 털어주는 바람 같았다.
내일은 어디를 갈까... 그 생각만으로도 이미 마음이 조금 들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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