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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후기

국내 예천 여행기: 곤충생태원, 회룡포전망대, 카페 장유원

by 크리m포켓 2025.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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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밖엔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고, 핸드폰 화면 속 지도 위에 손가락이 멈춘 곳이 예천이었다.
이름도 낯설고, 특별히 유명한 것도 없는 곳... 하지만 그게 오히려 좋았다.
유명하지 않아서, 누가 나를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아서...


그렇게 예천으로 향했다. 창문을 조금 내리니 찬 공기 속에 흙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햇살은 부드럽게 깔려 있었고, 논두렁 사이로 바람이 천천히 스쳤다.
차를 몰고 한참을 달리는데, 이상하게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이 공기 속에 조금 더 있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예천은 그렇게 내게 왔다.

계획 없이, 이유 없이, 그저 내 마음이 먼저 다다른 곳.
누군가의 추천이 아니라, 내 안의 피로가 고른 목적지였다.

예천 곤충생태원 야외 놀이터 모습

곤충생태원 

예천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향한 곳은 예천곤충생태원이었다.
입구에서부터 초록빛이 가득했다.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엔 풀 냄새가 섞여 있었다.
조용히 걸음을 옮기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엄마! 사슴벌레 봐!” 그 한마디에 괜히 입꼬리가 올랐다.

 

유리돔 안으로 들어서자 공기가 달라졌다. 따뜻하고 축축한 온기가 피부에 닿았다.
그 안에는 나비, 사슴벌레, 무당벌레, 이름 모를 곤충들이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유리 위로 햇살이 내려앉고, 나비 날개가 그 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 색이 너무 고와서, 나는 한참을 서 있었다. 마치 세상이 잠시 멈춘 듯 고요했다.

어릴 땐 곤충이 그냥 신기한 것이었는데... 지금은 그 느림이 부럽다.

그들은 목적 없이, 하지만 분명히 살아가고 있었다.

바쁘게 날아다니지 않아도, 제 속도로 살아가는 존재들... 그걸 보고 있으니 마음이 이상하게 따뜻해졌다.

한쪽에 전시된 표본들을 보다가, 오래된 나비 하나 앞에 멈췄다.

유리 안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이미 멈춘 생명인데도, 아름다웠다.

그걸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움은 꼭 살아 있어야만 가능한 건 아니구나.”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세게 불었다. 햇빛이 눈부셨지만, 그 빛이 따뜻했다.
나는 벤치에 앉아 한참을 하늘만 봤다. 푸르다 못해 투명한 하늘이었다.
아무 소리도, 아무 생각도 필요 없는 순간.
그저, 살아 있다는 감각만이 뚜렷했다.

회룡포전망대

다음으로 향한 곳은 회룡포전망대였다. 길이 구불구불했다.
창문을 열자 바람이 세게 불었고, 그 속엔 논의 흙냄새와 강의 습기가 섞여 있었다.
조금 오르막길이라 숨이 찼지만, 이상하게 발걸음이 가벼웠다.

전망대에 도착하자, 눈앞이 탁 트였다.
와, 하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강이 둥글게 휘돌며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햇살이 강물 위로 반사되어 반짝였다.
그 곡선이 너무 완벽해서, 사람의 손이 아니라 자연의 마음으로 그려진 듯했다.

그때 옆에 있던 노부부가 나지막이 말했다.
“저기 저 마을이 회룡포야. 강이 마을을 품고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돌고 돌아도 결국 제자리인가 봐요.”

아주머니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게 인생이지 뭐.”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머리카락이 얼굴을 스쳤다. 그 바람이 내 마음까지 쓸어내리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바랄 게 없었다. 단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카페 장유원 

전망대를 내려와 읍내로 향했다.

슬슬 허기가 졌다. 그때 눈에 들어온 건 유리창이 커다란 카페, 간판에는 ‘장유원’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유원’이라는 단어가 괜히 따뜻하게 느껴졌다.

안으로 들어가자 커피 향과 고소한 들깨 냄새가 섞여 있었다.
직원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긴 들깨라테가 인기예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커피 대신 들깨라테라니, 조금 낯설었다. 잠시 후, 따뜻한 잔이 내 앞에 놓였다.
윗부분에 고소한 들깨가 살짝 떠 있었다.
스푼으로 저으니 하얀 거품 위로 은은한 향이 퍼졌다.
한 모금 마셨다. 부드럽고 진했다.
들깨의 고소함이 혀끝에서 퍼지고, 우유의 따뜻함이 그 뒤를 따라왔다.
입안 가득 퍼지는 고요한 온기. ‘이 맛, 참 따뜻하다.’ 

 

창가에 앉아 밖을 내다봤다. 늦은 오후, 햇살이 유리창에 부딪혀 반짝였다.

그 빛이 테이블 위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그 순간, 모든 게 완벽했다. 고소한 향, 노래, , 그리고 나...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마음속의 먼지가 천천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평범한 오후가, 사실 제일 그립다.”

잔을 다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그 따뜻함이 손끝에 오래 남았다.

마치 위로처럼, 괜찮다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

해가 저물 무렵, 차에 올랐다.
하늘은 붉은빛에서 보랏빛으로, 그리고 곧 어둠으로 스며들었다.
도로 옆으로 펼쳐진 논밭은 이제 그림자만 남았다.

오늘 하루, 별일은 없었다.
그냥 걸었고, 바라봤고, 마셨을 뿐이다.
그런데 마음은 묘하게 가벼워졌다.

 

예천의 공기는 아직도 내 옷에 묻어 있는 것 같다.
나비의 날갯짓, 강의 곡선, 들깨라테의 따뜻한 향기.
그 모든 게 내 하루에 잔잔히 남았다. 이곳은 소리보다 ‘숨’이 먼저 들리는 곳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숨결 속에서 조금 더 ‘나답게’ 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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