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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수 여행기 2편: 예술랜드, 아쿠아플라넷 , 피타베이커스

by 크리m포켓 2025.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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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바람이 좀 달랐다.
밤새 내리던 비가 그쳤고, 창밖 하늘이 묘하게 투명했다.
바다가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랄까...
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바닥에 번지면서, 오늘 하루가 이상하게 반짝거릴 것 같았다.

 

컵라면에 김치를 얹어 대충 아침을 때우고, 창문을 다시 열었다.
짠내와 바람, 그리고 아주 희미한 구름 냄새.
그걸 들이마시는데,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 오늘은 그냥 느긋하게 걷자.”
그렇게, 발길 닿는 대로 여수의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됐다.

여수 예술랜드 마이다스의 손 풍경

예술랜드

예술랜드에 가까워질수록, 바람이 달라졌다.
한층 거칠지만, 그렇다고 불편하지 않은 바람... 차창 밖으로 푸른 수평선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햇살은 강했고, 바다는 그 빛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였다.

도착하자마자 절벽 위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손을 뻗어 사진을 찍고 있었지만, 나는 그냥 멈춰 섰다.
그 순간의 공기가 너무 생생해서, 카메라를 들고 싶지 않았다.
그냥 눈으로, 마음으로 담고 싶었다.

바다 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옷자락을 휘날렸다.
그 바람 속엔 파도와 햇살과, 어쩌면 오래전 누군가의 웃음까지도 섞여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절벽 끝까지 걸어갔다...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흐릿하게 섞여 있는 곳.
그 앞에 서 있으니 내가 세상의 끝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무서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니 조용했다.
벽면에는 빛이 부서지고, 유리에 반사된 파도가 출렁였다.
누군가의 예술이 아니라, 바다가 직접 그린 그림 같았다.
나는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 숨소리조차 아까운 순간이었다.

밖으로 나오자 햇살이 다시 눈을 덮었다.
바람은 여전히 불었지만, 그 안엔 이상하게 평온함이 있었다.
그날의 예술랜드는 작품이 아니라, 나를 잠시 멈춰 세운 ‘공기’였다.

아쿠아플라넷

점심 무렵, 여수의 바다는 조금 더 빛을 머금고 있었다.
햇빛이 강물처럼 흘러내리고, 도로 위로 파도 모양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빛을 따라 도착한 곳이 아쿠아플라넷이었다.

입구를 지나자 차가운 공기가 맞아줬다. 그리고 그 안엔 전혀 다른 세상이 있었다.
유리벽 너머의 물속, 파란빛이 가득했다.
작은 물고기들이 군무를 추듯 헤엄쳤고, 그 사이를 가오리가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그들의 움직임은 느리고, 유연하고, 아름다웠다.
그걸 바라보다가 문득, 사람도 이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부드럽게, 흐르듯이....

 

가장 기억에 남은 건 거대한 유리 터널이었다. 머리 위로 상어가 지나가고, 물결이 일렁였다.
빛이 수면에 반사되어 내 얼굴 위로 춤을 췄다. 나는 숨을 죽였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바닷속에 있는 듯했다. 조용했고, 차가웠고, 신비로웠다.

뒤쪽에서는 돌고래가 뛰어오르며 물보라를 일으켰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문득 생각했다.
“이곳은 어쩌면 어른들을 위한 위로의 공간일지도.”
바다의 깊은 푸른빛은, 묘하게 사람 마음을 씻어 내렸다.

 

밖으로 나왔을 때, 햇살이 다시 따뜻하게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차가운 유리 속에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마음이 잠시 쉬었기 때문일까... 아쿠아플라넷을 나오는 발걸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피타베이커스 

해가 기울기 시작할 즈음, 나는 자연스레 이순신광장으로 향했다.
바람이 조금 더 부드러워졌고, 하늘은 주황빛과 분홍빛이 뒤섞인 그림 같았다.

광장 옆 골목을 걷다가, 문득 코끝을 스친 냄새에 발이 멈췄다.
고소한 버터 향기, 그리고 갓 구운 빵 냄새가 솔솔... 얼른 맛있는 빵들을 보고 싶었다.

입구에서부터는 다양한 빵들이 진열대에 쌓여 있었다.
잘 구워진 듯 반짝이는 색, 그리고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 장면이 이상하게 포근했다. 나는 문을 열었다.

안은 따뜻했다. 밖의 공기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커피 향과 빵 냄새, 잔잔한 음악이 한데 섞여 있었다.
주문한 피타 크림빵이 나왔고, 첫 입을 베어 무는 순간, 부드러운 크림이 퍼졌다.
단맛 뒤에 살짝 느껴지는 짠 향이 있었다.

 

사람들이 오가고, 바람이 깃발을 스쳤다. 노을이 천천히 바다로 녹아들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있으니 마음이 이상하게 고요해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행복은 어쩌면 이런 순간일지도 몰라.”
아무 일도 없는데, 그냥 괜찮은 하루.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따뜻한 하루.

여수의 밤

돌산대교를 건널 때쯤,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바다 위로 불빛이 반짝이고, 도로 옆으로는 고요한 파도소리가 따라왔다.


창문을 조금 내리니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오늘 하루의 장면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예술랜드의 바람, 아쿠아플라넷의 푸른빛, 피타베이커스의 달콤한 냄새.

그 어느 것도 거창하진 않았지만, 그 모든 게 묘하게 완벽했다.
마치 나를 위한 하루처럼.

 

여수의 밤공기를 깊게 들이마셨다.
짭조름하고 따뜻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여행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내 마음이 잠시 숨 쉬러 온 시간이었음을.

오늘의 여수는 그렇게 나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 이제 좀 천천히 가도 돼.”
그 목소리가 바람 속에서 들린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응. 나, 지금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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